환자를 대상으로 해서 다양한 치료법 가운데 어떤 것이
효과가 있는 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임상 시험은
현대 의학에서 새로운 의학 지식이 만들어지는
가장 중요한 연구 방법입니다.
의료에 점점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향후 많은 부분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헬스케어는 임상 시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임상 시험에 대한 발표 의뢰를 받았는데
여러가지 자료를 보고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때 마침 최윤섭 박사님께서 아래와 같은 좋은 글들을 써주셔서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의학 연구를 어떻게 혁신하는가 (1): 임상 시험을 위한 인공 지능과 소셜 네트워크
디지털 기술은 의학 연구를 어떻게 혁신하는가 (2): 원격 임상 시험
우선 임상시험이 진행되는 과정을 개략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물론 임상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환자 모집 이전에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고
임상시험심사위원회 (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를 통과하는
등의 과정이 있습니다.
이미 주요 기관에는 e-IRB라고 해서 종이 서류 없이 IRB를 진행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등 이 과정에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가치를 더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여서 제외하였습니다.
이외에 디지털 헬스케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임상 시험 진행 과정은
위의 그림과 같은 5단계 정도가 해당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환자 모집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Cutting edge information이라는 제약관련 연구 정보 업체에 따르면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비용의 가장 큰 요인은 환자 모집이라고 합니다.
한 리포트에 따르면 환자 모집 지연으로 인해서 많은 임상 시험들이
임상 시험 실시 장소의 11%는 한명의 환자도 모집하지 못하며
또한, 80%의 신약 임상 시험은 환자 모집이 지연되어
즉, 제약회사를 비롯해서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입장에서는
피험자 모집이 가장 큰 이슈입니다.
수년 전부터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피험자를 빠르게 모집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입니다.
(물론 우수한 의료 수준, 인프라 등도 중요하긴 합니다.)
피험자를 빠르게 모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Big4 병원의 사이즈가 크고 이들 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이 워낙 심해서
암과 같은 중증 질환의 경우 Big4 병원 한 곳 당 국내 환자의 10% 이상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즉, 임상 시험을 실시하는 입장에서 Big4 병원 중 한 곳만 잡아도
어지간한 규모의 피험자를 모집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가 않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이렇게 임상시험을 시행하는 주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피험자 모집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환자 커뮤니티인 Patientslikeme입니다.
환자 모집과 임상 시험 진행 과정에 도움을 주고 있는 Patientslikeme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Patientslikeme가 임상 시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환자 모집, 환자 설명/교육/동의서 관리, 임상 시험 실시에 대한 부분입니다.
Patientslikeme는 단순한 환자 커뮤니티가 아닙니다.
주로 흔치 않은 질환들을 중심으로
환자들이 온라인 상에서 모여서 자신이 느끼는 증상, 복용하는 약물, 부작용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이 정보를 체계적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 뿐만 아니라 보호자가 가입해서 자신이 돌보는 환자에 대한 내용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중증 질환의 경우 환자가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거나 다른 환자들의 기록을 확인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배려한 것입니다.
설립자의 형제가 루게릭병이라고도 하는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환자였는데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서
2006년에 ALS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든 것이 그 시작입니다.
이후 여러 희귀 질환 및 암 등 다양한 질환으로 확대하였으며
현재는 전체 회원 수 35만명이며 ALS 환자만 12,000명이 있습니다.
ALS의 경우 미국의 신규 환자 가운데 10%가 가입한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Patientslikeme 설립의 계기가 되었던, 설립자의 형제인 ALS 환자에 대한 화면입니다.
(patientslikeme 설립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06년 Thanksgiving day에 임종하였습니다.)
profile 내용 가운데 위에 있는 FRS는 Functioning Rating Scale로 환자의 상태를 측정하는 수치이고
그 밑에 있는 FVC는 Forced Vital Capicity로 폐활량으로 보면 됩니다.
ALS는 근육이 약화되는 병이기 때문에 병이 진행하면 FRS 및 FVC와 같은 검사 수치가 나빠지게 되며
결국에 호흡 근육이 악화되어 호흡곤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환자를 비롯한 사용자들은 익명으로 가입할 수 있지만
적지않은 환자들이 실명과 자신의 사진을 사용해서 가입한다고 합니다.
뒤에서 더 설명하겠지만 Patientslikeme의 비지니스 모델은
이렇게 모인 환자 정보를 파트너 회사에게 판매하는 것인데
당연히 이름이나 이메일 주소, 생일 등은 공유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Patientslike의 Privacy Policy에 따르면
환자가 올린 사진은 공유 대상 정보에 포함되어 있어서
괜찮은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Patient이들 환자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 및 실시하는 치료법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

또한, 본인이 느끼는 증상 및 그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먹는 약물 및 실시하는 치료 방법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깁니다.

환자 개개인은 다른 환자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서
자신이 느끼는 증상이 질병으로 인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또, 남들은 어떤 약물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 지 등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담당 의사를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끔/짧은 진료를 통해서 충분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료 환자들로부터 이렇게 얻는 정보는 충분히 유용할 수 있습니다.
Paitnetslikeme는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회원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임상 시험을 실시하려는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ALS나 MS (Multiple Sclerosis: 다발성 경화증)과 같이 흔하지 않은 질병 환자 다수를
회원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이 자신의 질병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할만큼
자신의 질병을 관리하고 동료 환자들을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인 만큼
임상시험에 참여시키는 것도 수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Patientlikeme의 비지니스 모델 중 하나는 이렇게 임상 시험 참가자 모집을 돕는 것입니다.
환자가 입력한 내용을 바탕으로
(Patientslikeme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파트너사의 임상 시험의 참여 기준을 만족시키는 환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 임상 시험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파트너사의 임상시험만 올리다 보니
회원들이 진행중인 전체 임상 시험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대한 정보만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 6월 부터는 전세계 임상 시험 목록의 허브라고 할 수 있는 www.clinicaltrials.gov와
연동하여 회원들이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임상 시험에 대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여전히 회사 혹은 연구자가 맞춤형 메시지를 통해서 임상 시험 찾가자를 구하고 싶다면
Patientslikeme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면 됩니다.
그런데 Patientslikeme는 환자의 질병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임상 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모집하는 것을 넘어서서
연구를 하는 플랫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약회사 및 연구기관들은 질병에 대한 정보를 사서 독자적으로 연구를 할 수도 있으며
Patientslikeme와 공동으로 연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이 ALS 환자가 리튬을 복용하는 것이 질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입니다.
2008년 이탈리아에서 실시한 소규모 연구에서 리튬이 ALS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고
이후 Patientslikeme의 일부 회원들이 (FDA의 승인을 받지 않은 적응증에 대해서
약물을 복용하는) off-label로 리튬을 복용하였습니다.
이렇게 리튬을 복용한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환자들이 Patientslikeme에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비교, 연구한 결과 리튬이 ALS의 진행을 늦추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고 이를 논문으로 발표하였습니다.
Patientslikeme를 이용해서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연구를 실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회사 홈페이지에 보면 Patientslikeme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ALS나 Multiple Sclerosis와 같은 신경계 질환을 대상으로 해서
환자의증상 변화를 연구한 결과들이 많습니다.
몇몇 연구 제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폐경 이후 다발성 경화증 증상이 악화되는 경향에 대한 연구: 온라인 코호트 대상
- 환자가 스스로 기록한 증상을 사용한 단기간 파킨슨병 다이내믹 연구
- 간질관련 의료의 질에 대한 환자 평가 연구
-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한 다발성 경화증 평가 도구의 개발, 개선, 검증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암의 크기나 혈압, 혈당 수치와 같이 병원에서 측정하는 수치 보다는
환자가 느끼는 증상과 관련된 질병과 주제를 대상으로 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이 더 널리 사용되게 되면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Patientslikeme는 다양한 비영리, 연구기관, 회사들과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데
주요 파트너로는 머크(2012년), 사노피 (2013년), 제넨테크 (2014년) 등의 제약회사와
inVentiv(2013년)라는 제약 컨설팅 회사가 있습니다.
특히, 다른 회사들과는 특정 질병이나 제품에 대해 협약을 맺은 반면
제넨테크와는 Patientslikeme 전체 회원 정보에 대해 5년 계약을 맺었다는 점에서
Patientslikeme에 기록된 환자 정보를 활용해서 임상 연구를 할 때
질병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의사가 직접 체크하지 않고
환자 스스로, 혹은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서 기록한 내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데이터의 신뢰도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Patientslikeme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기록을 남길 정도의 환자라면
질병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내용의 정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질병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해당 질병 환자 전체를 대변하기 힘든 데이터의 편향성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비단 Patientslikeme를 활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임상 시험에 참여할만큼 적극적인 환자가 전체 환자를 대변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은 늘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Patienslikeme의 임상 시험에서의 활용과 관련하여 주목해야할 점은
앞에서 다루었던 ALS 환자에서의 리튬 복용과 같은,
기존 의학 지식 혹은 학설을 뒤엎을만한 연구 결과가
별로 나오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생각하면 훨씬 많은 결과가 발표되어야 했을 것 같은데
설립 후 9년, 리튬 연구 결과가 발표된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획기적이라고 할만한 연구 결과는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남긴 기록의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제약회사를 비롯한 연구 파트너들이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Patientslikeme의 가능성에 흥분했던 사람들을
머쓱하게 할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환자와 임상 시험 매칭에 도움을 주는 인공지능 IBM 왓슨
앞서 Patientslikeme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참여가능한 임상 시험을 알려준다고 했는데
이렇게 환자와 임상 시험을 매칭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임상시험마다 참여 가능한 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인데
특히, 많은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대량으로 판매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 약물이 줄어들면서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는 환자를 대상으로한 임상 시험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별, 연령, 혈액 검사 결과는 물론 과거 어떤 약물로 치료받았는 지,
(병리 조직 혹은 환자가) 어떤 유전자 형을 가졌는 지까지 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임상 시험 건수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환자 개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임상 시험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아 졌습니다.

이에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인 왓슨을 활용해서
임상 시험의 조건에 따라 참여할 수 있는 환자를 찾아내겠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IBM은 메이요 클리닉과 협력하여 메이요 클리닉의 환자와
임상시험을 매칭해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IBM에 따르면 메이요 클리닉 내에서만 항상 8,000개 이상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17만 개 이상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매칭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IBM 왓슨을 활용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왓슨을 활용하는 경우 비교적 손쉽게 임상 시험 대상자를 찾아서
해당자에게만 임상 시험 참여를 권하는 등 임상 시험 대상자 모집에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메이요 클리닉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메이요 클리닉 병원들 (로체스터에 있는 본원외에 피닉스, 잭슨빌에 있는 분원 포함)에서
현재 실시 중이거나 상태 확인이 안되는 것과 (Open/Status Unknown)
피험자 모집을 종료한 것 (Closed for enrollment)을 합하면
1290건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늘 8000건 이상의 임상 시험을 한다는 것은 좀 많아 보이는데
어느 쪽이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재까지 왓슨을 임상 시험에 활용하는 것과 관련해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환자와 임상 시험을 매칭시켜주는 것 밖에 없지만
더 큰 가능성이 기대되는 것은 오히려 임상 시험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는 쪽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글에서 더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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