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케어 비지니스 현황에 대한 글을 쓰다가 갑자기 필 받아서 (사실은 정리하던 내용이 비슷해서 까먹기 전에) DTx에 대한 글을 쓰고 돌아왔습니다. 보험자, 제약회사에 이어 이번에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비지니스 (Direct to consumer: D2C)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시리즈 이전 글 링크는 아래에 있습니다.
2019 디지털 헬스케어 비지니스 현황 (1): 보험자
2019 디지털 헬스케어 비지니스 현황 (2): 제약회사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영역 자체가 스마트폰과 같이 소비자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를 healthcare consumerism 차원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 누구나 건강을 최고로 생각하는데 (그에 비해 기존 의료 시스템은 너무 불친절했기 때문에) 이제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생겼으니 소비자들이 주도권을 가지는 세상이 열릴 것이다는 이야기 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다수의 소비자는 막연히 건강해지고 싶은 욕구만 있을 뿐 대부분 귀찮게 마련인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헬스케어에서 소비자가 직접 지불하는 경우가 적다는 점입니다. 특정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 돈을 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지불 의향이 낮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이슈는 신용재라는 헬스케어의 속성입니다. 헬스케어는 환자가 품질 혹은 효용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기 때문에 신용이 중요한데 그 신용을 의사, 병원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 스스로 판단이 힘들기 때문에 의사나 병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이 부여한 ‘신용’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D2C 시장은 심지어 규제가 덜한 미국에서도 전통적인 형태의 의료를 보완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굳이 자기 돈을 내가면서 쓰려고 하는, 소비자가 지불 의향이 있는 D2C 제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 민망함을 덜 수 있는 영역 2. 미용, 운동 영역입니다. 예전부터 귀찮음을 덜 수 있는 영역도 D2C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는데 미국의 경우 원격진료 전반이 보험 적용이 되거나 고용주가 benefit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D2C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원격진료 이슈를 피해간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는데 (앱기반으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 일부 사례를 보면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있지만 지불 의향이 낮은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제품에 폐가 될 것 같아서 사례를 들지는 않지만 value-based pricing의 기본, 즉 소비자의 가치 (=귀찮음을 줄여주고 시간을 아껴준다)를 돈으로 환산하고 그 보다 적은 금액을 소비자로부터 받아낸다는 개념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 혹은 지식에 대한 가치를 낮게 보는 인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병원에 진료 받으러 와서 검사나 약 처방 없이 의사 면담만 하면 왠지 돈 아깝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한 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1.민망함을 덜 수 있는 영역 (1): on-demand 처방 서비스
첫번째로 민망함, 달리 말하면 ‘쪽팔림’을 덜어주는 영역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제 두번째 책에서 간단하게 다루었는데 그 즈음부터 미국에서 관련된 스타트업들이 나타나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올해 JAMA와 NEJM에 각각 간단한 아티클이 실린 바 있습니다.
JAMA article: Prescriptions on demand (on demand 처방)
NEJM article: A study of Telecontraception (원격 피임에 대한 연구)
그리고 올해 주요 매체에서도 이에 대해 다룬 바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Drug Sites Upend Doctor-Patient Relations: ‘It’s Restaurant-Menu Medicine’
Fast Company: Buying prescription drugs online is easier than ever. But there are side effects
위 아티클, 기사의 내용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JAMA 아티클에 실린 표를 기본으로 다른 특징을 추가해서 on-demand 처방 서비스 업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위의 회사들이 on-demand 처방 분야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발기 부전, 조루, 탈모, 피임, 성병 등 ‘민망한’ 질환, 상황을 대상으로 합니다. Hims/Hers는 남성 대상의 Hims로 시작해서 작년 말에 Hers를 추가했습니다. Roman의 경우 Ro라는 회사의 자회사 (혹은 서비스의 하나)인데 Ro의 다른 서비스로는 Rory (헤르페스 약물인 acyclovir, 수면 장애를 위한 melatonin 등 대상)과 금연 서비스인 Zero가 있습니다. Hims/Hers의 경우 올 초에 Series C 펀딩을 받으면서 기업 가치를 $1.2 Bil으로 인정받아서 유니콘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발기부전 상담이 쑥스러우면 의사 앞에서 엄지손가락만 조용히 드세요’를 내세움
현재 On demand 처방 서비스의 핵심은 민망함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의사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 꺼내기 힘든 상황을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약사에게 처방전을 내미는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발기부전치료제를 야매로 판다는 광고 스티커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은 희망은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업계의 비지니스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보통 다음과 같습니다. 환자가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원하는 분야(질환)을 선택하면 질문지가 나옵니다. 현재 건강 상태, 함께 복용하는 약물 등에 대한 질문이 나오며 이에 답을 하면 그 내용이 회사와 계약한 의사에게로 전송됩니다. (회사들 주장에 따르면) 근무 시간 중에는 대개 수십 분 이내에 의사가 질문지 내용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다면 처방을 하게 됩니다. Asynchronous 혹은 store-and-forward telemedicine 방식입니다. 일부 주에서는 화상 또는 음성 통화 방식으로 실시간 진찰하는 synchronous telemedicine이 의무이기 때문에 그에 맞추고 있습니다. 회사는 의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으며 (정확히는 고용할 수 없으며) 의사들이 소속된 그룹과 계약을 맺게 됩니다. 이는 Teladoc과 같은 일반적인 원격진료 회사들이 계약하는 방식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Teladoc에 대한 예전 포스팅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이후 일반적으로는 회사와 계약된 3자 약국을 통해서 (대개 회사 측에서 별도 계약을 통해서 조달한 제네릭) 약을 배송하게 되고 환자가 원하는 경우 선택한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회사들은 환자가 선택한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내는 경우 3자 배송을 통해 미리 계약된 약을 쓰는 경우에 비해서 약값이 비쌀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민망함을 피하고자 하는 욕구를 생각해 본다면 집으로 직접 (은밀하게) 배송 받는 것을 선호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회사들은 ‘처방 -> 약품 판매’ 단계 모두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일부 기사에는 Hims의 경우 아예 제네릭 약을 직접 생산한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들 회사들은 대부분 구독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품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피임, 탈모, 조루, (여성) 성욕 증진 약물은 필요할 때만 먹기 보다는 평소에 꾸준히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구독 모델에 적합합니다. 이 가운데 조루, 성욕 증진의 경우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약한 반면 피임, 탈모는 이런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이들 각각의 영역만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가 (The pill club: 피임약, Keeps: 탈모) 만들어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업계 대표 회사라고 할 수 있는 Hims/Hers와 Roman을 비교해보면 Hims/Hers는 좀 더 소비자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Roman은 좀 더 의료스러운 느낌을 느낍니다. Hims/Hers는 의약품을 넘어 화장품, 샴푸같은 소비재로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회사 홈페이지에서 풍기는 느낌도 Hims/Hers는 소비재 느낌이 강한 반면 Roman은 처방이나 약물 자체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한 컨설팅 회사 홈페이지에 실린 분석에 따르면 Hims 홈페이지가 대화체로 이루어져서 재미있고 너무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 하는, 현대적이고 실리콘벨리스러운 느낌을 풍긴다면 Roman은 상담하고 의료에 초점을 둔 접근 (consultative and medical-focused approach)을 한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Hims 홈페이지 Roman 홈페이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료가 ‘신용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료 회사로 포지셔닝하고자 할 때 Hims/Hers보다는 Roman의 접근 방식을 택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다만, Hims/Hers가 화장품, 샴푸같은 소비재 영역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택한다면 소비자 친화적인 브랜딩을 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결국 전략의 문제로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컨설팅 회사 홈페이지를 보면 지불 의향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옵니다. 1842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월간 지불 의향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질환 별로는 발기 부전/조루 ($48.58) > 탈모 ($41.49) > 헤르페스 ($20.48)로 나왔습니다. 다만, 이는 평균치로 개인별로 편차가 상당히 컸습니다. 이를 연령대 별로 나눈 결과가 흥미로운데 발기 부전/조루와 탈모 모두 나이가 들 수록 지불 의향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런 지불 의향은 고객들이 얻는 가치인 ‘대면 진료 상황의 진료비 + 약값 + 민망함을 피하는 마음의 평화에 대한 댓가’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회사들은 이보다 낮은 가격을 받고 있습니다. 제공하는 가치를 충분히 monetization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들이 스타트업인 만큼 소비자로부터 ‘신용’을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진료비+약값+마음의 평화에 대한 댓가-저신용으로 인한 댓가’
를 가격으로 청구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회사들 간의 경쟁 때문으로 인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는 민망함으로 대변되는 일부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만 소비자들이 이런 ‘문제 해결’ 방식의 서비스에 익숙해 진다면 ‘민망함’을 넘어 ‘편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확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혈압, 고지혈증 같이 꾸준히 수치를 재는 것으로 상당 부분 진료할 수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같은 약을 복용하는 경우입니다.
원격 진료에 대한 규정이 완화된 미국의 경우에도 아직은 만성 질환의 영역에서 이런 asynchronous 방식의 원격 진료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Video visit을 내세우는 원격 진료 서비스인 Teladoc이 처음에 감기와 같은 일회성 문제로 시작했으나 현재 만성 질환 관리를 넘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젠가 on-deman 처방 회사들이 만성 질환 관리에 도전장을 낼 날이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on-demand 처방 서비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야 너무 당연하니 굳이 다루지 않으려고 하고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JAMA 논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선 솔루션 지향적 (solution-oriented)라는 점이 이슈가 됩니다. 회사의 서비스 모델이 특정 문제에 대해 특정 솔류션을 제시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피임의 경우 환자 상황에 따라서 피임약 이외에 다른 옵션이 더 잘 맞을 수도 있는데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그에 대한 검토 없이 회사에서 제시하는 특정 솔루션(=대개 경구 피임약)이 처방 가능한지 여부만 따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off-label (허가 외) 처방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일부 회사는 홈페이지에서 무대 공포에 대한 치료약으로 propranolol을 처방해준다고 이야기 합니다. off-label 처방은 의사의 처방권 내에서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무대 공포에 대한 치료 약으로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또, 평소 건강을 관리해주는 주치의와 단절되는 on-demand 의료 서비스의 취지 자체가 전체적인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최근에 갔던 한 컨퍼런스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나왔는데 미국의 기존 의료 상황에서도 주치의를 두고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 경우가 낮기 때문에 on-demand 서비스가 해칠만한 환자-주치의 관계가 애당초 없는 경우가 많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아직 병원을 다닐 일이 많지 않아서 병원이나 의사에 ‘신용’을 부여한다는 인식이 적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대면 의사소통에 익숙하고 어릴 때부터 디지털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중에 나이가 들고 질병이 생겼으 ㄹ때 이런 on deman 방식의 의료를 점점 더 선호하게 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2. 민망함을 덜 수 있는 서비스: 검사 서비스
앞서 다룬 회사들은 주로 약물 배달과 관련된 서비스를 주로 제공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EverlyWell, LetsGetChecked와 같은 회사들은 소비자 대상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검사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병과 같이 ‘병원에 가서 하기에는 민망한 검사’와 함께 콜레스테롤, 갑상선, 비타민 D 등의 검사를 제공합니다.
on-demand 처방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환자가 홈페이지를 통해서 검사 신청을 하면 의사가 내용을 보고 검사를 처방하게 되고 해당하는 검사 키트가 집으로 배달되는 시스템입니다. (아리조나 등 일부 주에서는 의사 처방 없이도 다수의 검사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귀찮아서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한참 이슈가 되었던 Theranos가 로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아직은 검사의 종류와 관계 없이 보험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병원에 가서 하기에 민망한 검사들은 집에서 할 이유가 뚜렷해 보입니다. 나머지 검사들의 경우 보험 가입자는 병원을 통해서 보험 적용을 받는 것이 저렴하기 때문에 굳이 집에서 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병원에 가기 힘들 만큼 바쁠 때 고려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검사 결과를 가지고 결국 의사 진료를 받는게 필요한 상황에서 진료의 연계 필요성을 염두에 둔다면 1회성에 가까운 검사 서비스를 이용할 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보험이 없거나 보험이 있지만 High deductible 보험이라서 크게 아프지 않은 경우 사실상 스스로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들 회사 서비스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전국적인 대형 검사 업체들이 DTC로 제공하는 검사 서비스와 경쟁해야 합니다. Quest diagnostics가 운영하는 Quest Direct가 대표적입니다.
이 회사는 환자가 검사를 신청하면 회사와 계약된 의사들이 처방 여부를 결정하는 것까지는 동일한 모델이지만 집에서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Walmart, Safeway, Vons 등의 소매 체인들과의 파트너쉽을 통해서 개설한 검사 센터로 환자가 방문해서 검사를 실시하게 됩니다. 현재 Quest Direct와 Everlywell, LetsGetChecked의 검사 가격이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는데 Quest Direct의 모회사인 Quest Diagnostics의 규모를 생각하면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또, Quest Diagnostics가 이들 스타트업보다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신용’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 집에서 하는 검사 종류에 제약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경쟁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집에서 실시하는 검사를 at home test라고 부르는데 이부분만을 tracking하는 시장 데이터는 구하기 힘든 것 같고 대개는 point of care test라는 영역으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point of care test는 병원의 응급실이나 병실에서 급하게 결과를 확인하는 용도로 실시하는 검사가 포함되기 때문에 이중에 at home test는 일부입니다. 대략적으로 보았을 때 at home test의 상당수는 혈당 검사, 임신 반응 검사가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앞서 언급한 이유로 인해 이외의 부분에서 at home test가 빠르게 확장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집에서 간편하게 실시하고 결과까지 바로 확인할 수 있는 hsCRP 검사가 있다면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hsCRP는 염증이 심한 정도를 보는 지표인데 감염 여부를 판단할 때도 사용합니다. 평소 건강했던 사람이 집에서 열이 났을 때 병원을 가야할 지, 아니면 해열제를 먹고 지켜봐도 될 지를 판단할 때 유용한 검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트인이라는 한국 회사에서 오뷰엠이라는 이름으로 집에서 정자 검사를 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는데 이 역시 ‘민망함을 더는 것’이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비뇨기과에 가서 컵 하나를 받고 저기 구석에 있는 방에 가서 (모종의 방법으로) 정액을 받아 오시면 된다는 말을 들어보신 분들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앱스토어에 올라온 리뷰를 보면 아직은 정확하게 검사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내 TCM 생명과학에서 출시한 가인패드 역시 민망함을 더는 DTC 검사입니다. 패드의 형태로 4시간 이상 착용 후 검체를 회사로 보내는 방식이며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HPV 진단용 (가인패드H)과 성병 진단용 (가인패드S) 2가지 제품이 있습니다. 산부인과 진찰대에서 민망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검사를 간편하게 할 수 있으며 회사 측에 따르면 정확도는 병원에서 하는 검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산부인과 병원에 더해서 편의점, 드럭스토어, 자체 홈페이지 등에서 판매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제품은 검사 결과를 환자에게 알려주지 않고 환자가 회사와 계약된 400여 개 병원 중 한 곳을 지정하면 그곳으로 결과를 보내줍니다. 앞서 살펴본 DTC 검사의 경우 민망한 문제 때문에 의료인을 만나야 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핵심인 반면 가인패드의 경우는 검사 방법의 민망함을 더는 것이 핵심인 셈입니다. 다소 번거러울 수 있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은 (귀찮아서 정확히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규제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의료계의 눈치를 보게 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품의 value proposition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민망함’이 남아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HPV 진단용인 가인패드H의 경우 의료적인 효용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HPV 단독 검사는 자궁경부암 스크리닝에서 1차 검사로 추천되지 않습니다. (한국 가이드라인, 미국 USPSTF 권고안) (다소 민망한 방법을 통해서) 자궁경부세포도말검사 또는 액상세포도말검사를 시행한 이후에 추가로 시행하는 검사입니다. 따라서 이 검사를 직접 소비자를 상대로 한 1차 검사로 하는 것은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가격도 이슈가 되는데 우리나라의 의료비가 워낙 싸기 때문에 7만6천원의 가격은 제법 비싸 보입니다. 특히, 이런 on demand 검사 방식은 기성 세대보다는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일 가능성이 높은데 가격이 만만치 않고 이들이 검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시장 확대가 녹록치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성병 진단용 가인패드 S는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3. 웰니스: 미용, 운동 등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질병 관리 영역의 경우 DTC 상황에서 소비자의 지불 의향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Noom과 Omada health를 비교해 보면 흥미롭습니다. (Disclaimer: 저는 Noom의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는 모두 체중 감량을 통한 건강 증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둘 다 미국 질병관리본부 (CDC)의 당뇨 예방 프로그램 (DPP)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Noom의 경우 (상대적으로 미용에 가까운) 건강한 체중 감량 서비스로 포지셔닝 하면서 DTC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Omada health의 경우 DPP 서비스로 포지셔닝 하는데 고용주의 장기적인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고용주 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DPP를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지니스 모델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체중 감량의 경우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확장 가능성을 의심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게으르다는 것을 감안할 때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그런 점에서 Noom의 성과는 주목할 만합니다. 거꾸로 보자면 그런 만큼 웰니스 영역에서는일반적으로 큰 노력 없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각광 받기 마련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양제 사업입니다. 영양제를 먹는 것만으로 건강해지거나 건강해질 것 같은 환상을 파는 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양제와 관련해서 디지털 헬스케어스러운 서비스로는 비타민 구독 사업이 있습니다. IT 매체인 cnet의 최근 기사는 미국에서 운영 중인 6개의 비타민 구독 서비스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비타민을 포함한 영양제 구독 영역에서 몇 개 서비스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들 회사 가운데 일부는 유전체 정보와 연계해서 비타민 (영양제)를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DTC 영역은 아니지만 현재 처방 디지털 신약 (Prescription Digital Therapeutics)의 선도 주자로 불리는 Pear therapeutics가 2016년에 비타민 소매업체인 Vitamin Shoppe와 함께 비타민에 대한 동반 앱을 만든 바 있습니다. 이후 Pear therapeutics의 전략 변경과 함께 파트너쉽을 중단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아직 비지니스 모델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경우가 많은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입장에서 비타민과 같은 영양제 시장은 매력적인 협력 대상입니다. 이 경우는 결국 제약회사와의 협력과 비슷한 그림으로 볼 수 있는데 영양제 회사가 소비재 성격이 강해서 의사 결정 속도가 빠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용 분야 역시 ‘힘 들일 필요 없는 웰니스’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용 분야는 (비지니스 모델 상 B2C라고 하기는 힘든) 성형 중개 서비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큰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 최근 큰 이슈가 된 것이 원격 투명 교정 서비스입니다. Smile Direct Club이 이를 대표하는 회사이며 올해 상장했습니다. 치과의사의 직접 진료 없이 투명 교정을 하도록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이 회사의 서비스는 아래와 같이 진행됩니다.
미국 전역에 300군데가 있는 smileshop을 방문해서 3D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여의치 않은 경우 집으로 imprint를 배달 받아서 본을 떠서 회사로 보냅니다. 회사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투명 교정기를 만들어 집으로 보내줍니다. 이후 상담이 필요한 경우 (치과의사와 직접 연결하는 것은 아니고) 콜센터 메신저를 통해서 하게 됩니다.
기존 투명 교정 시장의 강자는 Invisalign인데 이 회사는 치과 의사의 주문을 받아서 투명 교정 장치를 제작하여 공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모델에서는 치과의사의 마진이 보장되기 때문에 전체 진료 비용이 상당히 비쌌는데 Smile Direct Club은 원격 진료를 도입하면서 치과 의사의 마진을 대폭 줄여 비용을 낮추었습니다.
이 회사가 최근에 이슈가 된 것은 캘리포니아 주에서 (원격 치과 진료를 포함한) 치과 진료를 치과 의사 보드에서 감독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캘리포니아에서는 사업이 힘들어집니다. 미국에서 단순 처방에 대한 원격 진료(=의사 마진이 적은 경우)는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 진 반면 교정 치료와 같이 의사 마진이 큰 사업의 경우 원격 진료에 대한 저항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한 Uniform teeth 회사는 원격 진료를 부분적으로 이용해서 치과 의사의 마진을 어느 정도 보장하면서 전체 비용을 떨어뜨리는 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치과 의사를 방문하고 처방을 받아서 투명 교정기를 제작하도록 하고 이후에는 원격 진료를 통해서 진료 받도록 했습니다. 치과 의사 입장에서 교정기 제작 이후 단계는 진료에 따른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이 부분을 원격 진료로 돌리고 돈을 적게 받는데 부담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만큼 더 많은 신환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Uniform teeth는 아직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2개의 치과에서만 가능할 정도로 소규모이긴 하지만 Smile Direct Club에 대한 저항이 커진만큼 운신의 폭이 커질 수 있어 보입니다.
4. 기타
끝으로 DTC 유전체 검사를 간단히 다루고자 합니다. 미국에서 DTC 유전체 검사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23andMe와 같은 회사를 중심으로 FDA가 승인한 질병 관련 검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DTC 유전체 검사의 다수는 질병 검사가 아니라 조상 찾기 검사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질병 관련 DTC 검사 항목에 대한 규제를 풀고 있지만 DTC 유전체 검사 시장은 정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유전체 분석 장비 세계 1위인 Illumina의 분기 실적 발표에서 언급되는 내용을 보면 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2018년 3분기
‘DTC 고객사들이 지속적으로 인상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we continue to be impressed with the rate of growth we’re seeing among our DTC customers)’
2019년 1분기
‘예상보다 큰 DTC 매출 감소’ (larger than expected decline in DTC revenue), ‘2019년 남은 기간 동안 DTC 비지니스에 대해서 더 큰 주의깊게 보려고 한다 (we are factoring in even greater caution around the DTC business for the rest of 2019)’
2019년 3분기
‘주로 DTC로 인해서 arrays 관련 비지니스가 Illumina 전체 비지니스에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Arrays continue to be a headwind for Illumina in the third quarter both sequentially and year-over-year, primarily due to DTC)’
‘가까운 미래에 DTC의 성장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we do not expect DTC to return to growth in the near term)’는 표현이 나옵니다.
질병 관련 유전체 검사 자체의 특징만 놓고 봐도 DTC 질병 검사는 녹록치 않습니다. 우선, 유전자와 질병의 연관성이 높은 경우는 대개 드문 병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인을 상대로 했을 때는 양성 예측도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을 때 실제 질병이 있을 확률)가 낮게 나옵니다.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예전 포스팅과 제 책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검사해서 양성으로 나와도 결과를 믿기가 힘들다는 이야기 입니다. 반대로 빈도가 높은 질병 (당뇨, 고혈압 등등)의 경우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가 많고 유전자만으로 해당 질병을 설명할 수 있는 비율이 낮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DTC 유전자 검사는 빈도가 높은 질환이건 낮은 질환이건 그 의미가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일반인들로 하여금 유전자 검사를 받게 만들만한 킬러 서비스가 필요한데 그것이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조상 찾기 서비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수긍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조상 찾기 서비스는 그 의미가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DTC 유전자 검사는 ‘술이나 커피 대사 능력’, ‘피부 특성’ 등과 같이 재미가 있거나 웰니스 서비스와 연계 가능한 영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DTC 유전자 사업 발전을 위해서 규제를 풀어 질병 관련 유전자 검사를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앞서 언급한 이유로 인해 허용이 된다고 해도 큰 의미를 만들어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DTC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주요 분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보험자나 제약회사의 경우 원하는 것이 비교적 분명하고 그것이 쉽게 바뀌지 않지만 소비자는 언제라도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은 현황을 개괄한 것 정도로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넷플릭스 창업자가 창업 준비를 하면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That will never work’라서 이를 자신의 책 제목으로 정한 것처럼 소비자 취향은 속단하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오늘도 동분서주하는 창업가들께서 현재 상황을 바꿀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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