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험 업계에서 GA (General Agency: 독립보험대리점)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GA는 특정 보험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보험 판매 전문 회사로 여러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고 보험 상품을 판매합니다. 2018년 기준으로 보험 모집액의 40% 이상이 GA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험사 전속 설계사를 통한 모집액은 24% 정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보험 업계의 또 다른 트렌드는 온라인 모집 채널의 확대입니다. 절대 액수는 적지만 대면영업이나 텔레마케팅 대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채널 비중이 높아 보이지만 카카오나 네이버와 같은 IT 강자는 물론 토스, 뱅크샐러드 등 핀테크 회사들도 보험 판매를 시작했거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맵, 굿리치와 같이 보험에 특화된 핀테크 회사들도 같은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의 사업 모델은 디지털 GA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다양한 디지털 GA가 나오고 있습니다. 2019년 9월에 프루덴셜 보험회사는 Assurance IQ라는 디지털 GA 회사를 인수했는데 설립된 지 만 3년 지난 이 회사의 가치는 $2.35 Bil에 달했습니다. Assurance IQ는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소비자에 적합한 보험을 찾아주는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장점이 있는 지는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물론 제 검색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접점이 있는 디지털 GA인 Health IQ 회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할인을 제공하는 GA’입니다. 생명보험, 상해보험 (disability insurance)와 메디케어 보조 보험 (Medicare Supplement: Medicare에서 지불하지 않아 환자가 스스로 지불해야 하는 copay, coinsurance, deductible을 내주는 보험)을 제공합니다. 한 사이트에 이 회사에 대한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어서 우선 그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Health IQ를 통해서 보험 할인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아래와 같은 세가지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 건강 상태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집에서 건강 검진을 받음
- 건강 퀴즈: 식습관, 운동, 의학 지식에 대한 퀴즈 카테고리가 있으며 한 카테고리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Elite 배지를 취득해서 할인을 받을 수 있음
- 건강한 생활 습관에 대한 입증: 주로 운동 능력에 대한 입증
- 조깅: 8분에 1마일 달리기 (혹은 나이로 보정한 동등 수준의 달리기)
- 싸이클: 50마일 이상
- 수영: ‘compete in a meet’이라고 되어 있는데 경쟁에 참여해서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건강 퀴즈를 풀 수 있는데 저의 경우 3가지 카테고리에 걸쳐서 도전했는데 모두 미달해서 배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아래와 같은 쉬운 문제도 있지만

영양학적 지식을 요하는 어려운 문제도 많았습니다.

각각의 문제는 60초 내에 답해야 하며 문제를 맞추면 상단에 보이는 포인트가 점점 올라갑니다. 일정 개수 이상을 맞추면 Elite에 도달하게 됩니다. 다양한 카테고리의 퀴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주제의 퀴즈가 나오고 개인 별로 조합한 퀴즈도 있습니다.

검색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한 20대 블로거가 Health IQ에 대해서 다루면서 퀴즈를 풀어서 Elite 배지를 취득하는 것이 쉬웠다고 했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름 제가 내과 의사인데도 말입니다. 또한, 이 블로거에 따르면 Elite 배지는 한 개만 취득해도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이상 받았을 때는 그 사람 이름으로 기부를 해준다던지, 페이스북에 자랑할 수 있는 배지를 제공한다던 지 하는 (큰 의미 없어 보이는) 혜택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저는 Elite 배지를 한 개도 못 받아서 더 이상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보험료를 할인 받기 위해서 건강에 대한 지식을 입증하는 이외에 건강한 생활 습관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회사 홈페이지에는 입증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생활 습관 인증 이전에 회사 상담원과 통화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때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검색하다 보니 달리기는 스마트폰을 써서 입증한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Health IQ를 리뷰한 사이트들이 대부분 생활 습관 인증 방법에 대해서 다루지 않고 있는데 다들 실제로 써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Health IQ와 계약한 보험회사로 부터 보험료를 제시받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Health IQ는 독자적인 보험 회사가 아니고 보험 회사를 대신해서 가입자를 모아주는 GA이기 때문에 보험 가입자는 (Health IQ 홈페이지를 거쳐서) 외부 보험회사의 보험 상품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 어느 정도의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건강 퀴즈를 잘 풀어서 Health Literacy Credits을 획득하면 8%를, 건강한 생활 습관을 입증해서 Active Lifestyle Credits을 획득하면 9%를 할인 받는다고 합니다. Underwriting Credits으로 인한 할인율이 0~24%으로 나오는데 이는 건강 상태와 건강 검진의 결과로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은 모든 보험이 다 시행할 것이기 때문에 Health IQ만의 특징이라고 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누구나 다 하는 Underwriting credits을 제외하고 보면 생각보다 할인율이 크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Active lifestyle credits를 얻기 위한 조건 중 사이클로 50마일 타기가 있는데 이를 만족 시킬 정도면 건강 상의 위험은 9% 이상 감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Health Literacy credits을 획득할 정도의 건강 지식이 있는 것은 어느 정도의 의료비 절감과 연관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인율을 8%로 제한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2년 전에는 Health literacy credits 획득 시 4%, Active lifestyle credits 획득 시 4%의 할인을 제공한 것에 비하면 할인 폭이 두 배 이상 커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보다 정확한 위험 예측이 가능해지고 그 결과로 더 많은 할인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Health IQ가 생명 보험 위주로 시작한 것도 위험 예측의 용이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건강 보험의 경우 전체 의료비를 예측해야 하는 반면 사망률만 보면 되는 생명 보험은 위험 예측이 비교적 수월할 것입니다.
건강에 대한 지식이 많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Health IQ를 통해서 할인을 받고 보험을 가입하는데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Health IQ는 보험 가입에 관심이 있는 사람 가운데 건강한 사람을 선별하기에 유용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에 디지털 헬스케어와 접점이 있는 보험 회사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다른 회사들은 대부분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목표 달성도에 따라서 보험료를 할인 해주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건강 증진형 보험 프로그램이 허용되었고 최근에는 가입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건강 관리 기기의 가격을 10만원 까지로 높이는 방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건강 증진 프로그램은 가입자가 더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사람 습관 바꾸기가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보험 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고 이미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훨씬 손쉽습니다.
보험회사 건강 증진 프로그램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Vitality 프로그램이 발표한 자료를 보겠습니다. Vitality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예전 포스팅에서 다룬 바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인센티브 기반의 건강 증진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Discovery라는 보험 회사에서 운영하는데 모든 보험 가입자가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건강 행동에 대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항공권 할인, 건강한 식재료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며 보험료 할인 혜택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Vitality는 3가지 방법을 통해서 보험 청구 액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1. 나이 선별 효과 (가입자 평균 연령 낮아짐), 2. 건강 활동자 선별 효과 (Initial Engagement Selection effect), 3. 행동 변화 효과 (Behaviour Change effect)입니다.
첫 번째 Age selection effect는 젊은 층을 끌어들임으로써 보험 청구 액수가 적어지는 효과입니다. Vitality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Discovery 건강 보험 가입자는 경쟁사들 대비 평균 1.5~2년 가량 가입자 연령이 낮습니다.

Age selection effect로 인한 절감 액수 추정치는 위와 같습니다. Discovery 보험은 젊은 가입자로 인해서 6.8 Billion Rand (=3.7%) 정도를 절약한다고 합니다. 절약 액수 전부가 Vitality 프로그램으로 인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하는데 다른 이유로 Discovery 보험에 가입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Discovery 보험 가입 시에 Vitality에도 가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를 보정하면 Vitality 프로그램으로 인한 age selection effect는 3.8 Billion Rand (=2.1%)라고 합니다. 이는 보수적인 추정으로 보이는데 Vitality에 가입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Vitality 프로그램으로 인한 후광 효과로 Discovery 보험에 가입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핫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젊은 감성의 보험사’로 포지셔닝하는 효과입니다.
Initial engagement selection effect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는 나이와는 무관하게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이 가입함으로써 의료비를 절약하는 효과입니다. 총 2.6 Billion Rand의 절약 효과가 있는데 이 중에 Vitality 가입으로 인한 효과는 1.4 Billion Rand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생활 습관 변화로 인한 Behaviour change effect를 보겠습니다.
Vitality 프로그램에 가입한 후에 생활 습관이 개선됨으로써 절감한 액수는 1.3 Billion Rand로 추정됩니다. 이때, 생활 습관이 악화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들은 Vitality 때문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제외한다고 합니다.
Vitality 프로그램으로 인한 보험 청구액 절감 요인 3가지 가운데 나이가 젊거나 (3.8 Bil)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을 유도하는 것 (1.4Bil)은 가입자 선별 효과라고 볼 수 있는데 이 효과가 생활 습관 개선(1.3Bil)보다 더 큽니다. 특히, 나이로 인한 영향의 경우 직접적인 효과 이외에도 프로그램의 후광 효과로 인한 간접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감안하면 그 차이는 더 커질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Vitality와 같은 보험사 건강 증진 프로그램도 보험금 지급 위험이 적은 사람을 선별하는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생활 습관 개선 효과가 얼마나 의료비 절감에 도움이 될 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생활 습관 개선 정도에 따른 의료비 절감 효과를 알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동안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건강 증진 프로그램은 보상의 종류나 크기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생각되는데 데이터 수집 기간 동안 프로그램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측 모델을 만들기가 수월치 않아 보입니다. 제 짐작으로는 Vitality 프로그램의 손익을 설계할 때 생활 습관 개선 효과는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수준으로 감안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Health IQ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 습관 개선 같은 애매한 얘기는 난 모르겠고 가입자 선별에 집중하겠다’고 대놓고 선언하고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Health IQ는 현재의 건강한 생활 습관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정확한 툴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퀴즈를 통해서 얼마나 정확하게 건강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평가할 수 있을 지와 운동 능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지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건강한 사람을 선별하는 것은 Health IQ 회사의 한계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회사를 이용하지 않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 만으로 판단할 때 건강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더 비싼 보험료를 받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이 회사의 이미지가 덜 건강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궁금합니다.
Health IQ는 설립 5년이 지난 2019년 5월에 시리즈 D 펀딩을 받았으며 당시 가치는 ~$450 Mil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때 투자자 중에 Hanhwa Asset이라는 회사가 포함되었는데 아마 우리나라의 한화자산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살펴본 Assurance IQ가 3년 만에 $2 Bil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의 확장성에 대한 이슈가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7년에 비해서 할인 폭이 늘어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데이터 축적 → 정확한 위험 예측 → 보험료 할인폭 증가 → 더 많은 건강한 가입자 확보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서서히 자리 잡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빠르게 가치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한국의 보험 회사들도 건강 관리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결국 이는 신규 고객, 특히 건강한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번거럽게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선별 효과에 충실한 Health IQ와 같은 ‘건강체 선별 보험’도 곧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건강 지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메디에이지 회사가 디지털 GA인 보맵과 업무 협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두 회사 간의 협력이 Health IQ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