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에서는 (좁은 의미의) 원격진료가 적절하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원격진료를 좁은 의미의 원격진료, 즉 의사와 환자가 화상 통화 등의 방법을 통해서 진단 및 처방하는 경우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또한, 원격의료는 원격진료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으로 원격진료에 더해서 원격 모니터링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겠습니다.

또한, 주요 참고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백하건데 한국에서의 원격진료와 관련해서 한 때 저도 미국, 일본 등등 다하는 것 우리나라에서 못할 것 뭐있나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원격진료 논쟁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를 포함한 새로운 기술이 일방적으로 폄훼되고 배척되는 것을 느낄 때 그랬습니다. 나름 의사인 제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보니 디지털, 기술 혹은 혁신 쪽에 계신 분들은 더욱 과격한 생각을 하시는 경우를 봅니다. 이때 결론은 좀 과장하면 ‘한국 의사새끼들이 짱똘이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한국의사가 유독 이상한걸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뭐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의사들이 원격진료를 크게 반대하지 않거나 환영하는 경우도 많은데 유독 한국에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을까’의 답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찾아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주로 미국 사례를 가지고 보겠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과연 미국에서는 의사들이 혹은 의료 시스템이 쌍수를 들고 원격진료를 환영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우선 보험 적용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최대의 Payer이며 고령자를 위한 국가 보험인 메디케어는 매우 제한적으로 원격 의료에 보험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시골에 거주하는 가입자가 해당 지역에 있는 진료 시설을 통해서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 최대의 원격진료 회사로 주로 화상 통화의 형태로 감기, 비염 등 비교적 간단한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텔라닥과 같은 회사의 서비스는 메디케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돈 문제입니다. 미국의 외래 진료 수가(Physician Fee Schedule)는 행위별 수가제이며 별도의 진료량 통제 기전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간편한 진료 방법이 보험 적용이 되어 진료량이 급작스럽게 늘어나는 경우 감당하기 힘들다고 보는 것입니다. MedPac 보고서에는 이렇게 언급됩니다.

(메디케어에 돈을 대는) 납세자들은 환자 혹은 의료 공급자가 진료량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 재무적으로 보호되어 있지 않다. (taxpayers are not indemnified against the incentive for patients and providers to increase volume)

그럼에도 사보험사들은 원격진료에 보험을 적용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 같은 사보험사들이 보험 적용을 해준다면 메디케어의 위와 같은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사보험사들이 보험 적용을 해주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MedPac보고서에서는 사보험사들이 보험적용을 해주는 가장 큰 이유로 보험사들의 고객인 고용주들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고용주를 통해서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크게 두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self-insured와 fully-insured입니다. 두가지의 차이는 의료보험으로 인한 위험을 누가 부담하느냐입니다. self-insured는 고용주가 그 부담을 지고 fully-insured는 보험사가 집니다. self-insured는 고용주가 원하는 형태의 보험 상품을 만든다고 볼 수 있고 fully-insured는 사보험사가 만든 기성 보험 상품에 고용주가 가입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MedPac 보고서에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고용주들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으로 볼 때 self-insured 보험에서 주로 원격진료에 보험을 적용해준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의료보험에서 적용해준다기 보다는 고용주가 직원을 위해 제공하는 임직원 복지 프로그램에 가까운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최대 원격진료 회사인 텔라닥의 2019년 연차 보고서(10K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텔라닥은) 매출의 상당 부분은 피고용인을 위해서 우리 서비스를 구입하는 고객사(보험 혹은 self-funded benefit plan)로부터 나온다. 우리 서비스에 대한 수요의 상당 부분은 고용주들이 피고용인 대신에 지불하는 의료비를 관리하고자 하는 필요에 기반한다.

물론 여기서 고용주가 의료비를 관리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메디케어나 사보험사가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의료비 절감 효과에 대해서 고용주가 얼마나 알고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고용주가 아닌 사보험에서 원격진료에 보험 적용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진료행위 및 진료량을 통제할 수 있는 managed care인 경우가 많습니다. MedPac 리포트에서는 아래와 같이 언급합니다.

(원격진료에 제한적으로 보험 적용을 하고 있는) 메디케어와 사보험사들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지불 환경에 있다. Managed care에서 사보험은 환자의 의료 사용량 및 의료 공급자의 진료량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환자가 이용가능한 공급자 네트워크 제한, 사전 승인, 환자의 본인 부담 증가)이 있다. … 이런 차이로 인해 사보험은 메디케어에 비해서 원격진료에 대해서 더 많이 보험 적용을 해주는 경향이 있다.

올해부터 메디케어에서는 메디케어 어드밴티비 가입자에게는 일반적인 원격진료를 허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경우 메디케어가 아닌 개별 보험사가 위험 부담을 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일반적인 보험자는 아직 원격진료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물론 법적으로라도 해주는게 어디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누구나 겁내는 미국 의료비 상황을 생각하면 보험 적용 여부는 큰 의미를 가집니다.

두번째는 의사의 입장입니다.

왜 미국 의사들은 원격진료에 반대하지 않고 이를 통해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까요? (어느나라 의사와는 다르게) 대인배이고 혁신에 열려있기 때문에 그럴까요? 제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운전 서비스 우버의 운전사와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인이 편한 시간을 활용해서 간편하게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또, 미국에는 다양한 보험회사가 있고 가입자마다 보험 적용 범위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보험 청구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원격진료 회사는 이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어 의사의 행정 부담을 줄여줍니다. 또한 만만치 않은 액수가 들어가는 의료사고 보험도 처리해줍니다. 또한, 원격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의 특성 상 비교적 단순한 문제를 가진 환자가 많아서 의료사고가 생길 가능성 자체가 적고 손쉽게 진료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일 것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의사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원격진료에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은 섣부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될 때는 어떨까요? 저렴한 원격 치아 교정 서비스로 유명한 Smile Direct Club 사례를 보겠습니다.

Smile Direct Club은 오프라인에서 치과의사 진료를 받을 필요 없이 투명 교정기를 제작해주어 치아 교정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입니다. 기존 투명 교정 시장의 강자는 Invisalign인데 이 회사는 대면 진료 환경에서 치과 의사의 주문을 받아서 투명 교정 장치를 제작,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이 모델에서는 치과의사의 마진이 보 장되기 때문에 전체 진료 비용이 상당히 비쌌는데 스마일 다이렉트 클럽은 원격 진료를 도입하면서 치과 의사의 마진을 줄여 비용을 낮추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주에서 주로 치과의사로 구성된 감독 위원회 가 원격 진료를 포함한 치과 진료 전반을 감독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Smile Direct Club의 사업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치과의사들은 치과의사의 마진을 위협하는 스마일 다이렉트 클럽 모델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렇게 되면 사실상 캘리포니아에서는 사업이 힘들어집니다.

흔히 미국에서는 별 제약없이 원격진료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감기 환자 등 비교적 간단한 질환을 중심으로 한 일반적인 원격 진료처럼 도입 전후로 의사 수익이 비슷한 경우는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진 반면 교정 치료와 같이 원격 진료로 인해서 마진이 크게 줄어드는 경우 이에 대한 저항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별다른 제약 없이 국내 최고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의료 수가가 높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네 의원부터 국내 최고 병원까지 환자를 놓고 무한경쟁이 벌여서 최대한 많은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 애씁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네 의원에 있는 일반적인 의사는 원격진료로 인한 여파를 감당하기 힘듭니다.

자유 시장 사회에서 경쟁에서 낙오된 자는 당연히 도태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의료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소위 좋은 병원으로 갈 수록 의료 수가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만약 원격진료로 인해서 환자들의 대형 병원 쏠림이 더 심해지고 동네 의원이 도태된다면 의료비는 점점 더 늘어나게 됩니다. 또, 동네의원이 줄어들면 원격진료로 쉽게 해결이 안되는 문제는 모두 큰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봉합 같이 의사를 물리적으로 만나야 하는 시술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외에 우리나라는 진료 접근성이 워낙 좋다와 같은 뻔한 이야기는 굳이 쓰지 않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원격진료는 각 나라의 의료 여건에 맞추어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원격진료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나라 의료계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국민 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신용재라는 의료의 특성상 모든 형태의 의료에서 의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의사의 역할을 무시한 채 혁신을 도입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히, 원격진료를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의료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데, 원격진료와 같은 지엽적인 이슈로 인해서 모든 이슈가 발목 잡히는 상황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거꾸로 의사 입장에서도 좁은 의미의 원격진료를 제외한 원격의료에 좀 더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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