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원격진료를 다룰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미국에서의 의사 환자 간 원격 진료 현황을 바탕으로

원격진료에 대한 글을 쓴 지 며칠 지나지 않아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하면서 원격진료가 허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정 사실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의료인간 원격진료는 진작에 허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의사-환자간 원격진료입니다.

원격진료를 허용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가지 차원의 이슈가 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만 생각해봐도 진료 방법 (문자, 이메일 VS 전화 VS 화상 통화, 동기적 VS 비동기적), 진료의 종류 (교육 VS 상담 VS 처방 – 사실 상담과 진료의 구분도 애매합니다.), 처방의 범위 등 다양한 이슈가 있습니다.

원격진료가 가장 앞서간다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의사-환자간 원격진료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의료법과 같은 법을 통해서 가능한 의료 행위의 범위를 규정 짓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 의사협회(AMA)의 Code of medical ethics의 범위 내에 있는 행위가 통용됩니다. 법을 통해서 원격 진료 가능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신 개별 주(State)의 법을 통해서 원격진료의 정의와 범위를 규정 짓습니다. 따라서 미국 의료인과 이야기 할 때 한국의 의료법에서 원격진료가 금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칠게 이야기 하자면 미국 의사는 AMA의 Code of medical ethics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의 의료 행위를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의사의 의료 행위를 제약하는 것이 보험 적용 여부와 의사가 사용하는 제품의 FDA 허가 여부 등 다른 요인들입니다. 원격진료의 경우 보험이 적용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원격진료가 시작되는 계기가 1997년에 제정된 Balanced Budget Act인데 이 법에서 국가 보험인 메디케어에서 원격진료에 대해서 보험 적용을 가능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공공보험인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이외에 다양한 민간 보험사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가운데 메디케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단일 보험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민간 보험들도 메디케어를 따라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 보험들이 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하거나 수가를 결정할 때 메디케어를 참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수가의 경우 메디케어 수가의 x배 하는 식으로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전문가들은 ‘미국은 사실상 단일 보험자이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메디케어에서 다루는 원격진료 를 기준으로 보겠습니다.

현재 메디케어는 일반적으로 원격 진료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1. Telehealth
  2. virtual check-ins
  3. e-visits
  4. Remote Patient monitoring

1번은 기존부터 보험 적용을 받았고 2~4번은 2019년부터 보험 적용이 시작됩니다.

우선 1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번에서 이야기하는 Telehealth는 오프라인 진료 환경에서 하는 진료, 상담, 교육 등을 원격으로 시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진료 방법이 원격으로 이루어질 뿐 나머지는 동일합니다. 이는 오프라인 진료와 원격진료가 같은 의료 행위 코드를 사용하며 동일한 수가로 보상된다는 의미입니다.

참고로 의료 행위 코드는 미국에서 보험 청구에 사용하는 코드로 개별 의료 행위를 정의합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이 AMA에서 만든 CPT 코드이며 CPT 코드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메디케어는 HCPCS 코드를 만들어서 함께 사용합니다. 의료 행위 코드는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이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어떤 방법으로 진료하는 지를 정의합니다.

원격으로 제공되는 진료에 대해서 메디케어가 보험을 적용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와 그 코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외래 기반 대면 진료 가운데 원격진료가 가능한 것만을 다루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진료, 교육, 상담이 많으며 정신과적 선별, 치료도 해당됩니다. 이와 같이 메디케어는 원격진료로 제공가능한 행위 코드를 정해두고 있습니다.

행위 코드 진료 내용
CPT 99201~99205, 99210~99215 외래 원격 진료 (신환, 구환)
HCPCS G0420~0421 신장 질환 교육
HCPCS G0108~0109 당뇨 교육
CPT 96150~96154 건강 및 행동 평가 및 개입
CPT 90832~90838 개인 심리 치료
CPT 90791~90792 정신과 진단 상담
CPT 90963~90970 말기 신부전 환자 자가 투석 관련 치료
CPT 97802~97804, HCPCS G0270 의료 영양 치료
CPT 96116 신경 행동 상태 평가
CPT 99406~99407, HCPCS G0436~0437 금연 치료
HCPCS G0396~0397 알콜, 물질 중독 평가 및 치료
HCPCS G0442 매년 알콜 중독 선별
HCPCS G0443 알콜 중독 카운셀링
HCPCS G0444 매년 우울증 선별
HCPCS G0445 성병 예방 행동 카운셀링
HCPCS G0446 심혈관 질환 행동 치료
HCPCS G0447 비만 행동 카운셀링
CPT 99495~99496 퇴원 후 환자 관리
CPT 99497~99498 사전 연명 의료 의향 상담
CPT 90845~90847 정신 분석
CPT 99354~99355 장기간 진료가 필요한 경우
HCPCS G0438 매년 웰니스 진료 (예방 등)

행위의 범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Telehealth를 받을 수 있는 대상 환자입니다. 기본적으로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만 가능합니다. 또, 일반적으로 환자의 집에서는 받을 수가 없으며 지역 내 의료 시설에 가서 받아야 합니다. 즉, 지역 내 의료 시설을 발신지(originating site)로 해서 원거리(distant site)에 있는 의료진으로부터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단, 예외가 있는데 말기 신부전 환자와 물질 중독 환자는 집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원격진료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 이런 제약은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 최대의 보험인 메디케어는 집에서 핸드폰으로 화상 통화를 해서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 보험 적용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주로 민간 보험을 적용받거나 환자가 자기 돈으로 부담하게 됩니다. 메디케어가 제한적으로 원격진료에 보험 적용을 하는 이유는 이전 포스팅 (왜 한국에서는 (좁은 의미의) 원격진료가 적절하지 않을까?)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그리고 메디케어는 Telehealth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에도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이렇습니다.

‘use of telecommunications technology that have audio and video capabilities that are used for two-way, real-time interactive communication.’

핵심 단어는 real-time과 audio and vidoe일 것 같습니다. 즉, 전화 통화나 문자, 이메일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상이라고 해도 녹화 후 전송하는 것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원격진료를 할 수 있는 자격은 오프라인 진료와 동일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 영양 치료에 해당하는 CPT 97802는 영양사 혹은 특정 기준을 만족하는 영양 전문가(licensed registered dietitian (LRD) or nutrition professional meeting certain requirements.)가 제공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이는 오프라인 대면 진료와 원격진료 모두에 해당됩니다.

CPT 코드의 정의 안에 해당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자격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과 이에 속하는 직종은 다음과 같습니다.

  • Physician: 의사
  • Qualified non-physician healthcare professionals: NP, PA (전문간호사)
  • Clinical staff: RN(간호사), Medical Assistant

해당 CPT 코드로 메디케어에 청구할 수 있는 인력의 자격 조건이 위와 같은 식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동일한 행위라도 행하는 사람의 자격이 다르면 청구 코드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2~4번은 모두 2019년부터 메디케어의 보험 적용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Telehealth에 적용되는 제한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즉, 시골에 거주하지 않아도 되고 지역 의료기관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반드시 실시간, 영상/음성 통신이 가능하지 않아도 됩니다. 2,3번은 기존에 진료를 받던 구환에 대해서만 실시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2번 virtual check-ins은 굳이 번역하자면 원격상담 정도에 해당합니다. 5~10분 정도의 상담을 통해서 내원 필요 여부를 결정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행위 코드로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아, 5~10분이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진료 시간보다 길군요)

• HCPCS G2010: 환자가 찍은 영상 혹은 사진을 의사가 평가, 저장 후 전송 방식(store-and-forward)

• HCPCS G2012: 환자와 실시간(synchronous) 상담

virtual check-in은 영상통화가 아니라도 되며 음성통화, 이메일, 문자로 할 수도 있습니다. 단, 환자가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해야 한다(patient-initiated)는 단서가 있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의사가 환자에게 전화 걸어서 안부를 묻는 식으로 진료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3번 e-visits는 비동기적, 비대면 원격진료입니다. virtual check-in과 마찬가지로 환자가 시작해야 하며 통화나 문자, 일반적인 이메일은 안되고 online patient portal을 사용해야 합니다. online patient portal은 보안성을 갖춘 환자 진료용 홈페이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4번 Remote patient(혹은 physiologic) monitoring은 글자 그대로 환자가 어떤 장비를 사용해서 측정한 생체 신호를 의사가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료를 하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CPT 99091과 CPT 99453~99455로 구분됩니다.

먼저 만들어진 CPT 99091은 몇가지 단점이 있는데 이는 원격모니터링과 관련된 모든 걸 퉁치는 개념으로 기기 세팅 및 사용법 교육에 대해서는 별도로 보상하지 않습니다. 또한 의사와 Qualified health care professionals)에만 적용되고 30일마다 30분 이상의 시간을 써야 합니다.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CPT 99453~99455가 만들어지고 이에 대해서 메디케어 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 CPT 99453: 기기 세팅, 환자 교육

• CPT 99454: 모니터링 내용 확인

• CPT 99457: 모니터링 기반 치료 개입

CPT 99453~99457은 실시할 수 있는 의료진으로 Clinical staff가 포함되었고 업무 투입 시간이 20분 이상으로 줄었습니다. 대신, 의료진과 환자 혹은 보호자 간에 상호 커뮤니케이션(Interactive communication)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습니다. 여기서 interactive communication에 무엇이 해당되는 지가 이슈가 됩니다. CPT 코드에서는 이를 분명하게 정의하지 않고 있고 메디케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전화와 같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도 상관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은 2020년 1월부터 다소 변화가 생겼는데 메디케어 가운데 민간 보험사가 대행해서 운영하는 메디케어 어드벤티지에서 지역 제한 및 환자 위치 제한을 적용받지 않고 telehealth를 보험 적용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메디케어 어드밴티지에 대해서는 예전 포스팅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가입자 1인당 연간 일정한 금액을 지급받는 인두제 방식으로 민간 보험사는 해당 금액으로 위험 관리를 잘 해서 돈이 남으면 이익을 보는 것이고 아니면 손해를 보는 시스템입니다. 민간 보험사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만큼 더 많은 재량권을 가지며 일반 메디케어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것도 허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Telehealth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단,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며 보험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메디케어 어드밴티지는 메디케어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들은 반드시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virtual check-in, e-visits, RPM은 2019년부터 메디케어와 동일하게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메디케어 어드밴티지가 제한 없이 telehealth에 보험을 적용해 줄 수 있게 된 것도 법 때문입니다. 2018년에 Bipartisan Budget Act라는 법이 제정되었는데 여기서 이를 규정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메디케어의 원격진료와 관련된 두개의 법-앞서 나온 Balanced Budget Act와 Bipartisan Budget Act 모두 예산 절감과 관련된 법입니다. 미국이 왜 원격진료에 관심을 가지는 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 메디케어 (보통 original medicare라고 합니다.)는 여전히 telehealth에 대해 매우 제한적으로만 보험 적용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메디케어가 telehealth가 의료비를 줄일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아직 확신을 못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COVID-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새로운 변화가 생깁니다. 메디케어가 이번 사태 동안 telehealth에 대한 거주 지역 및 환자 위치 제한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나머지 제한은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즉, telehealth로 메디케어 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real-time’, ‘audio and video’ 기술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전화 진료를 하는 경우 telehealth에 속하는 코드로 보험 청구를 할 수 없으며 virtual check-ins이나 e-visits로 청구해야 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민간 보험의 경우 COVID-19 사태 동안 전화로 하는 일부 telehealth에 대해서도 보험 적용을 해주는 등 범위를 확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CPT 98966~98968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참고로 현재 원래 원격진료가 불법이던 우리나라에서 COVID-19으로 인해 임시로 전화 진료를 허용한 상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메디케어는 COVID-19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기존의 제약을 약간 완화하는 선에서 움직일 뿐 그 이상 적극적으로 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것은 꺼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번 사태가 끝난 후 메디케어는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추정하는 근거입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습니다.

원격진료를 허용한다고 할 때 생각보다 고려해야할 요소들은 많습니다. 제가 지난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것과 합해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실시 의료기관: 1차 VS 2차 VS 3차 의료기관
  2. 대상 질환: 감기 등 간단한 질환 VS 만성 질환 VS 그 이상 (원격진료를 할 수 있는 의료진의 범위도 이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3. 대상 환자: 신환 VS 재진 VS 주치의제 등록 환자
  4. 진료 범위: 교육 VS 상담 VS 처방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처방은 포함될 것으로 보이니 이 부분은 큰 이견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5. 진료 방법: 실시간 화상 통화 VS 전화 VS 이메일, 전화
  6. 수가: 기존 진료와 동일하게 VS 더 싸게 VS 더 비싸게 VS 본인 부담 비율
  7. 원격진료 전용 의원 허용 여부

원격진료를 이야기 할 때 최소한 위의 사안에 대해서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지에 대한 협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 정도의 이슈는 산업계에서 원격 진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 범위 내에서 원격진료가 허용된다고 해도 차세대 먹거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원격’이라는 기술을 사용할 뿐 여전히 의사 (혹은 관련 자격을 갖춘 의료인)의 개입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보다 훨씬 중요한 이슈는 사람 의사가 아닌 의료기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어디까지로 규정할 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