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 어떤 식으로 허용되어야 할까?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어떤 식으로건 원격진료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원격진료가 허용될 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본 전제는 예전에 한국에서의 원격진료 허용 문제에 대한 포스팅라는 포스팅에서 썼던 것처럼 1차 진료를 비롯한 기존 의료 환경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혁신 좋아하는 분들은 싫어하실 수도 있겠지만 두가지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첫째는 의료 시스템은 왜곡되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힘들며 특히, 역할에 비해서 중요성이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 1차 진료는 더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존 이해관계자를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격진료를 넘어서 의료계에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대부분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외국에서 원격진료를 도입할 때 의료진이 크게 반대하지 않는 것은 기존 시스템이 원격진료로 크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 향후 원격진료가 어떤 식으로 허용되여야 할 지에 대해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허용과 관련된 법률안은 20대 국회에서 두번 제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6월에 정부가, 2018년 2월 유기준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제출했습니다. 둘의 내용은 거의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21대 국회에서 나오게될 법률안도 이를 출발점으로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라서 유기준 의원 대표 발의 안을 중심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1.의사-환자간 원격의료 대상 환자 및 범위

2. 지켜야 할 사항

  • 원격의료만 하는 의료기관으로 운영할 수 없음
  • 원격의료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갖출 것
  • 같은 환자를 지속적으로 보는 경우 주기적으로 대면 진료를 해야 함

3. 원격지 의사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여 진료하는 경우와 같은 책임을 짐

법안 내용을 보면 1차 진료를 비롯한 기존 의료 환경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나름 고민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병원급에서는 제한적으로 시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차 진료 입장에서 우려 사항들이 있습니다.

우선 병원에서도 허용되는 것 가운데 의원급과 경쟁이 일어날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병원에서 허용되는 것 가운데 ‘신체에 부착된 의료기기’가 있는 경우는 원래 대형병원에서 진료받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일 것이라 1차 의료기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욕창 관찰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경우’는 표현이 애매합니다. 욕창 관찰은 병원에서 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경우’라는 표현이 애매합니다.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의원급에서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수술 창상 관리 등 특정한 경우로 한정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원급에서만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증 질환’이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만성질환과 정신질환은 재진 환자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차피 다니던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경증질환은 그런 규정이 없기 때문에 전국 단위로 1차 진료기관들이 경쟁을 벌이게 될 수 있습니다. 경증질환의 성격상 굳이 재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여기에도 재진만 대상으로 한다고 추가하거나 적어도 한번 이상 진료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참고로, 왕진수가 시범 사업에서는 1회 이상 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지켜야할 사항 가운데 ‘원격의료만 하는 의료기관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기존 1차 의료기관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갈 여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오프라인 의료기관이 콜센터 부스같은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원격진료만 전담하는 의사를 추가로 고용해서 원격진료를 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진단명으로 동일한 의료기관을 방문한 경우 재진환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대통령령으로 정한 경증 질환의 경우 재진이라는 규정도 없기 때문에 이런식으로 사실상 원격의료 전문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해당 규정의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의원급 의료기관은 의사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해당 환자를 대면 진료했던 의료진만 원격진료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식으로 이를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격의료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의료법에 의사-의사간 원격진료에 대해서 같은 규정이 있습니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나와 있는데 원격의료를 위해서 원격진료실과 장비(데이터 및 화상을 전송, 수신할 수 있는 단말기, 서버, 정보통신망)를 갖추어야 합니다.

시행규칙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원격진료실은 원격진료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규정이 왜 생겼고, 취지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필요한 규정일까 싶습니다. 대면 진료하는 틈틈이 원격진료하려면 상당히 번거러울텐데 별도의 공간에서 해야한다면 실효성이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원격진료를 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빅픽쳐?)

또, 원격진료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면 아예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진료하는 것도 허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격진료 대부분이 화상 통화의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데 굳이 의사의 위치를 진료실로 한정지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때는 원격진료 환자를 재진환자만으로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할 것입니다.

원격진료의 대상을 사실상 재진환자로 제한할 때의 부수적인 효과는 원격진료 플랫폼이 큰 의미가 없어진다는 점입니다. 원격진료와 관련해서 의료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에서 의료 영리화에 대한 우려를 제기합니다. 배달의 민족과 같이 플랫폼의 힘이 커지는 경우 의료 수익의 적지 않은 부분을 이들이 가져갈 수도 있고 진료 환경을 좌우할만한 힘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진환자는 어차피 해당 의원을 다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플랫폼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원격진료 서비스 업체는 지금 병의원에서 이용하는 전자의무기록과 같이 솔루션 제공 업체로서의 역할만을 하게될 것입니다. 참고로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보통 한달에 10~20만원 정도를 전자의무기록 업체에 지불하고 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가 어디 협회나 단체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대표성 없는 뇌피셜입니다. 모든 의사가 제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이정도를 놓고 논의를 한다면 그래도 (제 생각에) 실효성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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