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디지털 헬스케어 법에 따른 디지털 치료제 인허가 및 수가 인정 과정

2019년 11월 독일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법(Digitale-Versorgung-Gesetz)이 통과되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전자의무기록 및 데이터 교류에 대한 내용이라고 하는데 디지털 치료제의 수가화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책에서 간략히 다룬 바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독일) 규제기관(Bundesinstitut für Arzneimittel und Medizinprodukte: 독일 식약처)의 승인을 받은 앱은 1년간 임시로 수가 적용을 받게 된다. 그 기간 동안 환자 케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제품은 지속적인 수가를 적용 받는다. 구체적인 수가 적용 방식과 같은 세부 사항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재 알려진 디지털 치료제 수가 적용 방안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제가 독일어를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검색할 수가 없었습니다. 관련된 독일어 문서가 있으면 구글에 넣고 번역해서 볼 수 있겠지만 독일어로 검색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가 원하는 문서를 찾는게 힘들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독일 식약처에서 최근 이에 대한 내용을 영어 문서로 발표했습니다. 디지털 치료제의 인허가 및 수가 적용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내용이 보여서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이 문서의 제목은 “The Fast-Track Process for Digital Health Applications (DiGA) according to Section 139e SGB V. A Guide for Manufacturers, Service Providers and Users”입니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앱의 조기 승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앱 승인 신청 후 3개월 이내에 승인 결정을 내리고 승인을 받은 앱은 디지털 헬스 앱 목록(Digital Health App Directory)에 등재됩니다. 등재된 앱은 바로 보험 적용이 됩니다.

디지털 헬스 앱의 정의

여기서 디지털 헬스 앱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 의료기기 위험 등급 Class I 혹은 IIa에 해당할 것 (잘은 모르겠지만 위험이 높지 않은 것을 의미할 것 같습니다.)
  • 주요 기능이 디지털 기술에 바탕을 둘 것
  • 단순히 기기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기기를 조작하기 위한 것은 해당되지 않음. 주요 디지털 기능을 통해서 의료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 해당됨 (The medical purpose must be achieved through the main digital functions)
  • 질병, 상해 및 장애를 발견, 모니터링, 치료 혹은 경감하는 용도
  • 1차 예방은 해당 안됨 (즉, 생활 습관 관리를 통한 건강 증진은 해당안되는 것으로 보임
  • 환자 단독 혹은 환자와 의사가 함께 사용하는 경우만 해당됨. 의사가 단독으로 사용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제품은 해당 안됨

부연되는 내용에 보면 단독 앱 형태도 가능하지만 하드웨어 기기와 함께 사용되는 앱도 가능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경우, 주요 기능은 디지털 앱이어야 하며 하드웨어는 앱의 기능을 달성하는데 필요한데 그쳐야 합니다. 또, 의료진의 상담, 코칭과 같은 서비스가 결합될 수 있으나 서비스 없이도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즉, 순수한 원격진료 플랫폼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물론, 사람 의료진 없이 순수 알고리즘 만으로 원격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 여기서 말하는 디지털 헬스 앱(Digital Health Application: DiGA)는 이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으로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즉, 일반적인 정의가 아니라 법적 용어라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등재 과정

등재 과정은 크게 조건부 등재(provisional listing)와 정식 등재(final listing)으로 구분됩니다. 조건부 등재는 데이터 보안, 사용성 등 1차적인 조건을 만족시키는 앱을 대상으로 하며 정식 등재는 여기에 효과를 입증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정식 등재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청 3개월 이내에 목록 등재 여부가 결정되고 등재 시부터 신청일 기준 12개월까지는 제조사가 제시한 가격으로 보험 적용이 됩니다. 그리고 12개월 후부터는 제조사와 보험사 간 협상을 통해서 가격이 정해집니다. 의사의 처방을 받거나 처방 없이도 환자가 앱의 적응증에 해당된다는 서류를 제출하는 경우 보험 적용을 받아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조건부 등재 관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기 과정은 정식 등재와 비슷합니다. 신청 3개월 이내에 목록 등재 여부가 결정되고 기본적으로 등재 시부터 신청일 기준 12개월까지는 제조사가 제시한 가격으로 보험 적용이 됩니다. 제조사는 12개월 내에 효과성에 대한 데이터를 제출해야 합니다. 단, 효과성 입증에 시간이 걸린다고 인정되는 경우 조건부 등재 기간을 신청일 기준 24개월까지 연장해 줍니다. 효과성 데이터 제출 후 3개월 이내에 정식 등재 여부가 결정됩니다. 정식 등재 결정 시까지는 보험 적용이 되며 등재되지 않는 경우 보험 적용이 중단됩니다. 보험 적용이 중단단 이후라도 제조사가 희망하는 경우 (보험 적용이 중단된 상태에서) 이후에 효과성 데이터를 다시 제출 하고 등재 여부를 결정받을 수 있습니다.

목록 등재를 위한 신청이 지난 5월말부터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신청한 앱들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총 15개가 있는데 모든 앱을 포함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제품들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단, 제품 용도는 뚜렷하게 명시되지 않은 경우 제가 회사 홈페이지 대충 둘러보고 짐작해서 쓴 것이니 틀릴 수도 있습니다.

  • Ada (by ADA Health): 증상 확인 및 진단 (Symptom checker)
  • zanadio (by aidhere): 비만 관리
  • mentalis (by Antaris Digital Health Solutions): 정신 건강
  • ESYSTA (by Emperra): 당뇨 관리
  • HelloBetter (by GET.ON Institute for Online Health Training): 정신 건강
  • CARA Care (by HiDoc): 과민성 대장 증후군
  • by klier.net: 고혈압 관리
  • Lindera (by Lindera): 낙상 예방
  • somnio (by mementor DE): 불면 치료
  • mySugr (by mySugr): 당뇨 관리
  • M-sense migraines (by Newsenselab): 편두통 관리
  • sinCephales (by Perfood): 편두통 관리
  • Selfapys (by Selfapy): 정신 건강
  • SciTIM (by Telemonitoring Interventions in Medicine): 디지털 헬스케어 데이터 플랫폼
  • Vivira (by Vivira Health Lab): 근골격계 통증 훈련

목록 등재를 위해 디지털 헬스 앱이 갖추어야 할 조건 (1)

이 문서에서는 디지털 헬스 앱의 조건에 대해서 다양한 내용이 나오는데 데이터 교류(interoperability)나 보안과 같은 내용으로 제 관심사 밖이라서 자세히 보지는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조건이 세 가지 보이는데 한가지는 디지털 헬스 앱에는 광고가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디지털 헬스 앱은 24시간 이내 독일어로 응대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지원이 제공되어야 하는점입니다. 단, 최소 한가지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채널만 독일어로 응대하면 된다고 합니다. 즉, 이메일 문의에 독일어로 답해준다면 전화 문의는 영어로 답해도 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처리 장소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 독일 이외에도 EU 국가 내라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독일과 상응하는 수준의 데이터 보안 규정이 갖추어진 제 3국도 괜찮다고 되어 있습니다. 허용되는 제3국의 목록이 나와 있는데 미국, 일본은 포함되며 한국과는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목록 등재를 위해 디지털 헬스 앱이 갖추어야 할 조건 (2): 효과성

한편 디렉터리에 정식 등재되기 위해서는 ‘Positive Healthcare Effect’를 증명해야 합니다. Positive Healthcare Effect는 크게 의료 효용(medical benefit)과 환자 관련 효용(Patient-relevant improvement of structure and processes)로 나뉩니다. 의료 효용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생명 연장, 삶의 질 개선, 건강 상태 개선, 유병 기간 단축이 포함됩니다.

환자 관련 효용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 치료 과정 코디네이션 (Coordination of Treatment Procedures)
  • 가이드라인 혹은 공인받는 의료 기준에 부합되는 치료 제공 (Alignment of Treatment with Guidelines and Recognised Standards)
  • 순응도 개선
  • 의료 접근성 개선
  • 환자 안전
  • 건강 정보 이해 능력 개선 (Health literacy)
  • 환자 자주권 (Patient Autonomy)
  • 일상 생활 속에서 질병 관련 어려움에 대한 대처
  • 환자 및 그 친지가 치료와 관련된 노력이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

환자 관련 효용에 속하는 9가지 경우 가운데 몇 가지는 과연 이런 것에 보험 적용까지 해주는 게 맞는가 싶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아마도 원래 독일 의료 보험이 이런 일종의 카운셀링에 대해 보험을 적용해 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디렉터리 등재 심의 과정에서 의료 효용이나 환자 관련 효용과 관련해서 경제성은 포함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미국 FDA나 식약처와 같은 규제기관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디렉터리에 등재되면 무조건 수가를 적용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단, 이 문서에는 추후 가격 협상 시에 필요한 경우 경제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는 있습니다. 즉 경제성이 떨어지는 경우 낮은 수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효과성 입증을 위한 연구의 형태

요구하는 연구의 종류와 관련해서는 몇가지 사항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선, 대조군을 사용한 비교 연구를 반드시 실시해야 합니다. 또, 대조군으로는 기존 치료군(디지털 헬스 앱을 사용하지 않는 치료군), 치료 하지 않는 군, 다른 디지털 헬스 앱 사용 군과의 비교가 가능하다고 제시합니다. 전향적 연구 이외에 후향적 연구도 가능하며 기존 치료 결과(historical control)와의 비교 연구도 가능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와는 별개로 2020년 7월에 이 법을 설명한 영어 논문이 한편 나왔는데 여기서는 의학적 효용이 전문가 의견, 사례 연구 등을 통해서 입증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의 내용과 비교해 봐도 그렇고 규제 기관이 얼마나 빡센 곳인지를 감안해도 그렇고 이정도의 증거만 요구할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원칙적으로 연구는 독일에서 실시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 이유는 디지털 헬스 앱이 결국 독일 의료 환경 내에서 독일 의료진과 독일 환자에 의해서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사용된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다른 국가에서 일부 혹은 전체의 연구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그 연구가 이루어진 환경이 독일과 상응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인정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취지라면 같은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 정도에서 실시한 정도나 인정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건부 승인을 신청할 때는 제품 효용 데이터는 제출할 필요가 없지만 건강을 향상 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systematic evaluation of data on the use’의 증거는 제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문헌 고찰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결론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수가 적용을 통해서 시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데 스타트업이 많은 업계의 특성상 가급적 조건부 임시 수가를 만들어서 환자들이 사용하고 가치를 입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는데 이런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 법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나하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런 법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 어느 정도의 수가가 적용될 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금년 2월 DTx West 컨퍼런스에서 독일의 근골격계 DTx 회사인 KAIA health의 CEO와 이 법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법이 생기면 수가도 받고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더니, 자기네는 독일에서는 수가를 얼마 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 트랙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진출에 집중하겠다고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수가가 적용되어도 고민은 끝나지 않나 봅니다.

실제로 2020년 7월에 발표된 논문에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게다가 (수가 협상) 과정은 투명하지 않은데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관련 서류가 공개되지 않는다.

수가 관련된 이슈는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디지털 헬스케어 앱에 대해 3개월 내에 (수가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목록 등재 여부를 결정해주는 빠른 행정 절차, 또 수가를 적용받으면서 12~24개월간 효용을 입증할 수 있는 시스템은 눈여겨 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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