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봉이 김선달의 최고봉: GoodRx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 소식이 많아서 점점 정리하기가 버거워집니다. 물론 다 미국 이야기입니다. 미국 뉴스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이게 한국에는 어떻게 적용가능할 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가 가능할 지 등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근데 이번에 상장을 준비하면서 S-1 서류가 공개된 GoodRx는 미국의 특수한 시스템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 및 대부분의 국가에 도입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흥미로운 점들이 있어서 S-1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GoodRx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처방 의약품 시장, 특히 그 중에서도 PBM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과 차이가 나는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민간 보험 회사를 포함한 다수의 보험자가 존재: 이들은 제약사와 자유롭게 계약을 맺어서 약값을 결정합니다.
  2. 약가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도매 공급가 이외의 가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기업간의 사적 계약의 영역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3. List price와 실제 가격의 차이가 크다: ‘미국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청구서가 나오는데 보험이 있으면 의료비 자체에 할인이 많이 들어가며 그 중에서 본인 부담 액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보험이 부담한다.’ ‘엄청난 청구서가 나와도 결국 협상해서 가격을 깍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병원, 제약, 약국 등 모두가 공식 가격(list price)를 엄청 부풀리고 실제 가격은 대폭 할인합니다. 이때 보험이 없으면 호구되기 쉽습니다. 특히 보험이 없이 문제가 생겨서 응급실에 가게 되는 경우 미국 법상 진료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진료는 받을 수 있으며 퇴원 후에 진료비 명세서가 나오면 배째면 됩니다. 하지만 처방 약은 약국 가서 돈을 내지 않으면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4. PBM의 존재: Pharmacy Benefit Manager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보험사를 대신해서 약품 처방 목록(formulary)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Formulary는 각각의 약 종류마다 어떤 약을 우선적으로 처방할 지를 규정합니다. 우선 순위 약물이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의사는 목록 이외의 약을 처방할 수 있으나 이 경우 환자는 보험 적용을 제대로 못받기 때문에 해당 환자의 보험에 맞추어서 처방하게 됩니다. PBM은 자신들이 Cost-benefit을 감안해서 formulary를 만들기 때문에 의료비 절감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PBM의 비지니스 모델은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서 일부는 챙기고 이 중 상당 액수는 보험사에 넘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PBM은 순수한 비용효과성보다는 자신이 받을 리베이트를 감안하게 됩니다.
  5. 리베이트가 합법: 사적 비즈니스에만 해당합니다.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와 같은 공보험과 관련된 진료에서는 리베이트가 불법입니다. 보험사는 자신들이 리베이트를 받기 때문에 보험료를 덜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외부에서는 처음부터 리베이트를 염두에 두고 가격을 부풀리는 관행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리베이트가 의료비 상승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처방약 시장의 구조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GoodRx로 돌아와보겠습니다. 위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사보험에 가입한 환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 구조에서 보험이 없는 환자들은 PBM의 영역 밖에 있습니다. 이 환자들은 약국에 가서 자기 돈 내고 약을 사야 합니다. 그리고 보험에 가입했지만 High-deductible plan (보험 적용되기 전 본인이 100% 부담하는 금액인 deductible이 높게 책정된 대신 보험료가 싼 보험)에 가입한 경우도 비슷합니다.

GoodRx은 이런 환자들을 모아서 PBM에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PBM은 이들에게 처방되는 약에 대해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습니다. 그 중 일부는 챙기고 일부는 GoodRx에 제공하며 GoodRx는 자신이 받은 리베이트 중 일부로 약가를 인하시키는 구조입니다. 환자는 약국에 가서 GoodRx 앱에 나와 있는 정보 (혹은 아마 웹에서 출력한 쿠폰)을 제시하게 되며 약국은 이 정보를 입력해서 어떤 약이 GoodRx를 통해서 팔렸는 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 약사들은 GoodRx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번거럽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수동으로 환자 및 처방에 대한 각종 정보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약사들이 이를 거부하기는 힘든데 약국이 PBM과 계약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PBM이 보험 고객과 GoodRx 고객을 다 관리해주는 조건으로 약국과 계약을 맺기 때문에 보험 고객만 받고 GoodRx고객을 안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대신 PBM은 ‘야, 보험 고객은 최종적으로 돈이 입금되는데 시간이 오래걸리지만 GoodRx 고객은 그 자리에서 돈을 내니까 현금흐름에 좋잖아’고 이야기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GoodRx는 처방약에 대한 보험회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별도의 보험료는 없고 제약회사로 부터 나와서 PBM을 거쳐서 들어온 리베이트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모바일 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버, 배달의 민족, 텔라닥 등 다양한 양면 플랫폼(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는 플랫폼: 텔라닥의 경우 의사-환자)이 등장했고 이들 중 적지 않은 수는 별로 하는 일 없이 중간에서 돈만 떼 간다고 욕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플랫폼들은 나름 중간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GoodRx는 별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보험 영역 밖에 있어서 건드리지 못했던 환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PBM이 대기하고 있고 반대쪽에는 보험 없는 상태에서 비싼 약값때문에 고생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것만으로 GoodRx는 빠르게 성장하면서 큰 돈을 벌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연평균 56%씩 매출이 늘었으며 2019년에는 매출 $388Mil에 순이익이 $66Mil에 달합니다.

이것만으로 GoodRx의 핵심 비즈니스에 대한 설명이 끝납니다. 여기부터는 S-1 서류에서 눈에 띄는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비즈니스 구조입니다.

핵심인 PBM 비즈니스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PBM으로 부터 prescription transaction fee라는 이름으로 rebate를 넘겨 받습니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8년 94%, 2019년 91%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구체적인 계약 방식은 GoodRx로 인해서 발생하는 매출의 일부분을 받는 방식이 많고 거래 당 일정 금액을 받아가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약은 아무래도 브랜드 약 보다는 제네릭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각 업계마다 과점화가 진행중인데 PBM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가장 큰 돈줄이되는 PBM의 과점화는 당연히 GoodRx 입장에서 이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3개의 PBM의 매출 비중이 2018년에는 61%, 2019년 55%, 2020년 상반기 48%라고 합니다.

GoodRx 입장에서 PBM 고객을 잃는 것이 큰 위험일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PBM은 B2B 비즈니스에는 능하지만 B2C의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GoodRx가 소비자 유치를 잘 하는 이상 그 관계를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보다는 유사한 일을 하는 경쟁자와의 경쟁이 더 중요한데 영세한 곳이 많아서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룬 GoodRx를 위협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번째 비즈니스는 소비자 구독료 모델입니다. 아까 GoodRx가 보험료를 받지 않는 보험과 유사하다고 했는데 이 모델은 사실상 보험입니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구독류로 받는 대신 추가 할인을 제공합니다. 이런 모델을 쓰는 이유는 Amazon Prime과 유사합니다. 약간의 구독료 수입도 좋지만 이보다는 고객 lock in을 통해 고객의 lifetime value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구독 고객의 첫해 기여 금액(first year contribution)이 일반 고객의 두배라고 합니다.

세번째 비즈니스는 제약사 솔루션입니다. 제약회사는 비싼 오리지널 약에 대해서 본인 부담금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제약회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GoodRx는 특정 오리지널 약을 검색하는 환자들을 본인 부담금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제약회사와 연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참고로 본인부담금 할인 행위인데 한국에서는 불법이고 미국에서도 메디케어와 같은 공보험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불법입니다. (근데 이를 살짝 비켜가는 꼼수가 있기는 합니다.)

네번째는 원격진료입니다. 저도 모르고 있었는데 2019년 9월에 GoodRx는 Heydoctor라는 원격진료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3월에는 Telehealth marketplce를 시작했습니다. Telehealth marketplace는 (대개 규모가 작은) 외부 원격진료 회사 및 D2C 검사 업체를 위한 플랫폼입니다. Teladoc, AmWell 같은 주요 회사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Doctor on Demand, One Medical, 98point6, Roman이 파트너로 참여한다고 합니다.

GoodRx에서 약을 검색하는 고객의 20%는 처방이 없다고 하며 이런 원격진료를 통해서 (비교적 간단한 질환에 대한) 처방전을 받도록 도와주는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환자들이 GoodRx를 쓰게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매출 증대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즉, GoodRx 입장에서 원격진료 자체는 일종의 미끼 상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경우 (환자가 100% 부담하는) 진료비가 $20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이 액수는 거의 그대로 의사에게 넘어간다고 합니다.

사실 이건 좀 이상한데 왜냐하면 Teladoc이나 AmWell에서는 보통 원격진료 건당 $40 전후를 의사에게 지불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원격진료 실적과 관련해서는 2020년 2분기에 Heydoctor로 원격진료를 받은 고객은 일평균 1000명이었다고 하며 Telehealth marketplace를 통해서 원격진료를 받거나 검사를 받은 환자는 200,000명이라고 합니다. 비교를 위해서 Teladoc과 AmWell을 보면 Teladoc은 2020년 상반기 4백8십만 건, Amwell은 2백9십만 건의 원격진료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GoodRx 쪽의 수치가 2020년 1분기에도 똑같이 이어졌다고 가정하면 (그때는 코로나가 적었기 때문에 이는 실적을 과대 추정하게 될 것입니다.) 180일 x 1000건 + 200,000 x 2해서 580,000건이 됩니다.

Telehealth marketplace를 만든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GoodRx는 현재로서는 원격진료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AmWell이 집으로의 약물 배송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원격진료 회사들의 사업 확장에 따라서 GoodRx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볼 때 상당기간은 영향이 적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Teladoc이나 AmWell 같은 주요 원격진료 회사와 GoodRx의 고객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Teladoc 및 AmWell은 고용주 혹은 보험에 가입된 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GoodRx는 비보험자를 주 대상으로 합니다. 게다가 AmWell이나 Teladoc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 계속 적자인 반면 GoodRx는 상당한 흑자를 거두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Heydoctor보다 큰 원격진료 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정리하자면 GoodRx는 미국에 특화된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으며 해자도 훌륭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장 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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