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은 ‘비타민’이 아니었다: 헬스케어에서 웰니스 이슈

스타트업 업계에서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진통제 VS 비타민’ 이야기 입니다. 스타트업 (혹은 어떤 조직)이 택할 수 있는 업종을 둘 중 하나로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통제는 통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을, 비타민은 있으면 좋지만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은 것을 상징합니다. 진통제 파는 업을 해야하며 비타민 파는 업은 힘들다는 메시지입니다.

좋은 이야기지만 뭔가 좀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비타민을 비롯한 영양제 산업 규모는 매우 큽니다. ‘야, 비타민 같은 업을 하면 안되’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거물 산업입니다. 오죽하면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홍삼처럼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하지요. 게임 업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게임은 누가봐도 비타민이지만 엄청 잘 되는 산업입니다.

개인적으로 비타민은 어떻게 이렇게 큰 산업이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헬스케어에서 B2C는 힘들다는 것이 정설인데 비타민은 이를 벗어난 예외적인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제 책에서 영양제 사업을 ‘영양제를 먹는 것만으로 건강해질 것 같은 환상을 파는 업’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왜 그렇게 큰 사업이 될 수 있었는 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비타민처럼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아직 비즈니스 모델이 잘 나오지 않는 디지털 헬스케어도 B2C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비타민, 더 넓게는 영양제 산업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다양한 자료를 섭렵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사람들은 어떻게 비타민을 먹기 시작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Vitamina(by Catherine Price), Vitamina(by Rima Apple),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하비 리벤스테인)라는 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타민 산업의 역사

1880년대에 ‘새로운 영양’이라는 패러다임이 발표됩니다. 식품은 인체에 연료를 공급하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결합체로 인식되었습니다. 각 식품에 3대 영양소가 얼마나 함유되었는 지를 측정하고 일일 섭취량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후 1910년대까지 식품에는 필수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으며 실험실의 과학자들이 그 양을 측정하여 건강에 좋도록 식단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11년 풍크라는 생화학자가 부족할 경우 각기병을 유발하는 물질을 발견합니다. 이로 인해 3대 영양소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은 깨집니다. 하지만 실험실의 과학자들이 영양소를 측정해낼 수 있고 이를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풍크는 이 영양소에 비타민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나중에 비타민 B가 됩니다.

처음 발견된 비타민이 왜 비타민 A가 아니라 B가 되었느냐는 의문이 드신다면 정상이십니다. 1915년에 화학자 맥컬럼이 부족할 경우 눈병을 유발하는 성분을 분리해 냈는데 맥컬럼은 처음에는 ‘지용성 인자 A’라고 이름을 붙였다가 비타민이라는 이름이 더 기억하기 좋다고 생각하여 비타민 A로 이름을 바꾸고 풍크가 발견한 성분을 비타민 B로 밀어냅니다.

이어서 비타민 C, 비타민 D가 발견되는데 각각 부족할 경우 괴혈병과 구루병을 유발합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영양소가 존재하며 이것이 부족한 경우 질병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가 이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믿음이 퍼집니다. 각기병, 괴혈병, 구루병이 얼마나 드문 병인지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식품업계는 이를 기회로 삼습니다. 대중들의 비타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 제품에 비타민을 첨가했으니 부족한 비타민을 우리 제품으로 채우라는 광고를 공격적으로 하기 시작합니다.

정리하자면 비타민은 건강해지기 위해서 먹는 개념으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식이로 충분히 먹을 수 없으며 부족할 경우 끔찍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영양분이 있으며 이를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개념을 통해서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닥 아쉬울게 없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은 비타민과 같은 영양제를 굳이 따로 챙겨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일반인들이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즉, 비타민을 비롯한 영양제는 ‘비타민’이 아니고 ‘진통제’에 가까운 셈입니다.

물론 비타민 이외에도 ‘진통제’와 ‘비타민’의 경계는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인스타그램도 어떻게 보면 비주얼로 잘난 척하는 공간(=’비타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시작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예쁘게 찍고 이를 손쉽게 공유하고 싶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진통제’) 것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원래 속성이 ‘진통제’냐 ‘비타민’이냐 하는 것보다는 우리 제품이 진통제로 작용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헬스케어에서 ‘웰니스’라는 개념은 애매합니다. 사람에 따라 정의가 다르겠지만 쉽게 생각하자면 이는 크게 빠지는 것 없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진통제’라기 보다는 ‘비타민’의 속성에 가깝습니다. 웰니스라는 애매한 개념보다는 불면, 우울증, 체력 저하 등 어떤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하는 것이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두루뭉술한 웰니스라는 개념은 ‘비타민’도 아닌 ‘공기’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고 굳이 따로 생각하지 않는, 당연한 것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공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산소캔을 파는 사업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상대적이긴 합니다만 여기서는 ‘현 상태에서 나빠지는 것없이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것’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안전 산업과 비슷합니다. 대개 안전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CIA 같은 정보 기관은 9.11 이전에 수많은 테러 시도를 막았지만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가 9.11이 터지면 욕만 엄청 먹게됩니다. 물론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는 안전에 따로 투자를 하겠지만 적어도 B2C 상황에서 안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돈을 쓰는 경우는 제한적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컴퓨터 백신을 개인이 사서 쓰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기업에서 직원 컴퓨터에 깔거나 컴퓨 터 (혹은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처음부터 탑재해서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은 좀 낫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B2C 컴퓨터 백신 시장은 그리 크지 않아 보입니다.

웰니스의 애매함을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보겠습니다.

Weight Watchers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다이어트 회사이고 미국 주식 시장에 상장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주요 주주이고 이사회 멤버로 있습니다.

이 회사는 다이어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웰니스 회사로의 전환을 시도합니다. 2018년 2월에 새로운 사명(impact manifesto)를 발표하는데 여기에는 체중 감량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healthy habits’, ‘health living’, ‘make wellness accessible to all’ 같은 표현만 나옵니다. 이어 2018년 9월에는 사명을 WW로 변경합니다. 이후에 WW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난 5년간 WW의 주가 추이입니다. 공교롭게 사명 변경 직전인 2018년 7월에 최고가를 찍고 이후 계속 빠져서 지난 2년간은 최고가의 절반 이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물론 주가가 회사의 가치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없고 체중 감량에서 웰니스로의 전환이 주가 하락의 원인을 모두 설명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기껏 웰니스로의 전환을 선언해놓고서 사실상 체중 감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각해 본 논리를 적용하면 체중 감량이라는 문제 해결보다 웰니스라는 애매한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의 전략 방향이 은연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비단 헬스케어 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소비자로 하여금 지불 의향을 이끌어내기가 힘듭니다. 헬스케어와 같은 제3자 지불 방식에서는 이 현상은 더 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자기 돈 쓰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나마 길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방법은 소비자가 실감할만한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면, 우울증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를 상정하고 이를 해결해주겠다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물론 소비자가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그렇게 느끼지 않는 소비자에게 ‘당신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강요해서는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One thought on “비타민은 ‘비타민’이 아니었다: 헬스케어에서 웰니스 이슈

  1. 선생님, 저는 고2 남학생입니다.
    의대를 꿈꾸고 있습니다만 시국이 시국이라 대외활동이 많이 제한되어있는 상황입니다. 혹시 저희 학교에서 미래 헬스케어에 대하여 강연을 해주실 수 있나요?

    제작년에 선생님의 멕켄지에서의 이야기를 우연히 읽었던걸 시작으로 홀린듯이 미래 헬스케어에 대한 내용을 까지 읽었습니다, 정말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선생님의 비젼을 보고 감명받을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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