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검사의 가치 평가: 스크리닝에서 모니터링까지

투자자로써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를 만나면서 불가피하게 업의 성공 가능성을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회사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회사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카테고리화 하고 그에 대한 큰 그림을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큰 그림은 스타트업이 자신의 업을 평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투자자가 좋아하는 아이템이 반드시 성공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시장이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미리 짐작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진단에서부터 모니터링에 이르는 의료 업무 플로우를 중심으로 아이템의 가치 평가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단, 이 글에서 다루는 다양한 사례는 과거 제 글에서 다루었던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링크만 남기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진료 플로우를 아래와 같이 도식화 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진료는 진단과 치료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 앞뒤로 각각 한단계를 더할 수 있습니다. 진단 전 단계로 스크리닝이 있습니다. 스크리닝과 진단은 일반적으로 증상의 유무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무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실시하는 검사를 스크리닝, 증상이 발생한 다음에 의사의 진료를 받고서 실시하는 검사를 진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스크리닝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진단 검사를 받게되는데 이때는 여전히 ‘증상’은 없기 때문입니다.)

진단이라고 하면 보통 확진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확진 검사는 기본적으로 위험하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암에 대한 확진 검사인 조직 검사를 생각해보면 몸을 찔러서 암으로 의심되는 조직을 얻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질병 (예: 암)이 의심되는 모든 환자에서 바로 확진 검사를 실시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해당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측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확진 검사 실시 여부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암이 의심될 때는 CT나 MRI, PET 같은 검사를 하고 그 결과에서 암일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대상으로 확진 검사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검사를 여기서는 위험도 구분 검사라고 부르겠습니다.

확진 후 바로 치료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적절한 치료 방법을 결정하기 위한 추가 검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동반 진단입니다. 동반 진단은 어떤 치료법에 잘 듣는 환자를 선별하기 위한 검사입니다. 요새 각광받는 동반 진단은 표적 항암 치료제에 대한 것입니다. 표적 항암제는 글자 그대로 특정한 치료 표적을 가진 암환자에 잘 듣습니다. 반대로 해당 표적이 없는 환자에게는 잘 듣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약값이 비쌉니다. 따라서 해당 표적을 가지고 있는 환자를 선별할 유인이 존재하며 이때 동반 진단 검사를 실시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검사 혹은 수술을 통해서 얻게된 암 조직에 대해서 표적(=유전자 변이) 유무룰 검사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반 진단,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에서의 동반 진단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른 글에서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확진 혹은 동반 진단이 끝나면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치료가 끝난 후 모니터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치료 효과가 지속되는 지, 재발하지는 않는 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여기까지는 의료를 좀 아는 분이라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실 만한 내용입니다. 이제 디지털 헬스케어와 같은 새로운 제품을 도입할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의료 기기 (진단, 치료)가 도입될 때 치료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받게 됩니다.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비용으로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거나 기존 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더욱 저렴한 경우 보험 적용을 받아 주류 의료계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검사나 치료 방법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료계에서 보고자 하는 ‘치료 결과’는 생존률 향상입니다. 이 진단 방법, 이 치료 방법을 새롭게 도입했을 때 기존에 비해서 최종적으로 환자들이 더 오래살 수 있는 지를 증명해내야 합니다. 물론 생존률 자체를 입증하는데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생존률과 의미있는 상관 관계를 보이는 대리 지표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스크리닝~진단~치료~모니터링에 이르는 요소들 가운데 치료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기 쉬운 것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요? 직관적으로 보면 치료 결과에 가까울 수록 그 영향을 보여주기가 쉬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한다면 이를 환자에게 적용하고난 결과가 바로 치료 결과이기 때문에 그 효과가 우수하건 그렇지 않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니터링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치료 결과에서 멀면 멀수록 그 영향을 보여주기 힘들어 집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을 적용했다고 해도 그 뒤의 진료 플로우가 달라지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건강 검진에서 흉부 X-ray를 찍었는데 결절(nodule: 작은 덩어리)가 관찰되었다고 해보겠습니다. 결절이 발견된 모든 환자가 이를 통해 건강상의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결절이 발견된 환자 중 특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상당 수는 굳이 추가 검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는 폐암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중 일부는 CT(=위험도 구분 검사)를 찍을 것인데 상당수는 CT 결과에서 별 것 아닌 경우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CT에서 폐암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직 검사를 실시할 것인데 그중 상당수는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면 건강 검진에서 찍은 흉부 X-ray에서 이미 많이 진행된 폐암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위의 과정을 모두 거쳐서 확진되어도 치료에서 큰 도움을 받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물론 폐암 IV기라고 해도 항암제 투약 시 생존 기간 연장에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치료 결과에서 멀면 멀수록 그 검사 방법이 치료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여주기가 힘들어 집니다. 특히 치료 결과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스크리닝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힘듭니다.

이와 관련해서 새로운 스크리닝 방법의 효과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한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Lead time bia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와 같이 스크리닝을 통해서 발견했을 때 환자가 더 오래 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증상이 나타난 이후 진단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실제 환자의 생존 기간이 길어진 것이 아니고 다만 진단 시점을 당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단 시점이 당겨진 기간을 Lead time이라고 부릅니다.

치료 결과에서 먼 단계, 즉 진료 플로우의 초기 단계일수록 가치 입증이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초기 단계일수록 유병률이 낮은데 이로 인해 양성 예측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과거 제 책과 블로그에서 여러번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히 적지는 않겠습니다. (이 포스팅을 참고하십시오.) 뒷 단계로 넘어올수록 위험도 선별을 거치면서 유병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치료 결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새로운 스크리닝 방법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은 대단히 힘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때에 맞추어 건강검진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뭐 많이 해주는 것처럼 생색내는데 막상 검진 받으러 가면 몇가지 않해준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 CT나 MRI 정도는 찍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일반 인구 집단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스크리닝 검사 방법은 모두 국민건강보험 검진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는 아래과 같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여기에 들어가 있지 않은 스크리닝 검사 방법은 적어도 일반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했을 때 그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 검사 항목 가운데 가장 최근에 도입된 것이 폐암 검진입니다. 위의 표에 보면 54세~74세의 폐암 발생 고위험군이 그 대상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위험군은 30갑년 이상의 흡연력을 가진 현재 흡연자입니다. 즉,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폐암 검진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고 폐암의 위험이 높은 (=유병률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만 효과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매우 오랜 연구와 논쟁 끝에 도입되었는데 그만큼 새로운 건강검진 방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의료 인공지능을 통해서 X-ray나 CT 판독 정확도를 높이는 것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X-ray나 CT는 스크리닝 혹은 위험도 구분 검사이고 여기서 판독 정확도가 3~4% 정도 높아졌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환자가 오래 사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판독 보조용 의료 인공지능이 보험 수가 적용을 받은 사례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과거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진단 방법을 개발하고자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할까요? 대략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스크리닝: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용도의 검사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검사 방법과 비교할 수 있는 경우가 입증이 용이
  2. 위험도 구분: 확진 검사의 필요 여부를 밀접하게 제시해줄 수 있는 경우 굳이 생존률까지 입증하지 않고 확진 검사 실시 여부에 대한 성과만을 평가해도 됨
  3. 모니터링: 치료 결과와의 상관 관계가 높기 때문에 비교적 입증이 용이
  4. 용도를 막론하고 기존에 사용 중인 검사 방법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업무 플로우를 개선할 수 있는 경우 입증 부담이 적음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Exact Science의 Cologuard입니다. 대변에서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서 대장암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선별해 줍니다. 원래 대장암에 대한 선별 검사는 분변잠혈검사 (대변에서 혈액을 검출)와 대장내시경입니다. Cologuard는 대장내시경이 번거럽고 비싼데 (미국 기준) 굳이 이를 받을 필요가 없는 환자를 걸러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장암에 대한 스크리닝 방법이 오래 전부터 확립이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폐암을 대상으로 가래 DNA 검사를 통해서 스크리닝하려고 한다면 이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직 폐암 선별 검사는 이제야 제한된 인구를 대상으로 간신히 그 효용이 입증된 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스크리닝 방법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1은 스크리닝 내에서 위험도 구분을 해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비싸거나 위험한 (대장 내시경은 100%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검사를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찾아주는 용도이기 때문입니다.

2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협심증 환자에서 관상동맥 CT에 Heartflow FFRct 검사를 추가하는 것입니다. 과거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협심증 환자에서 확진 검사는 관상동맥 조영술인데 이는 비싸고 위험합니다. 따라서 옛날부터 이에 대한 위험도 선별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관상동맥 CT인데 문제는 CT는 혈관이 얼마나 좁아졌는 지를 보여주는데 그친다는 점입니다. 혈관 상태에 대해서 이를 지나가는 혈류까지 평가해야 하는데 CT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를 해결해주겠다는 것이 Heartflow FFRct입니다. 관상동맥 CT 결과를 이 시스템에 입력하면 혈류 추정치를 보여줍니다. 이를 보고 의사는 관상동맥 조영술의 필요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 때 Heartflow FFRct는 그 자체가 환자 생존률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관상동맥 조영술이라는 검사가 이미 확립이 되어 있고 이를 받을 필요가 없는 환자를 골라내주는 검사이기 때문에 관상동맥 조영술 결과와의 상관 관계만 밝혀도 충분합니다.

3번은 치료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치료 결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치료 결과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입증이 비교적 수월합니다.

휴대용 심전도 측정기로 유명한 AliveCor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AliveCor는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소형 심전도 측정기로 우수한 휴대성을 자랑합니다. 부정맥 특히, 가장 흔한 심방세동의 경우 돌발성으로 생겼다가 사라졌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치료를 받은 다음에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 제품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직 심방세동으로 진단되지 않은 환자가 가지고 다니다가 돌발적으로 가슴이 두근거릴 때 이를 사용해서 심방세동을 진단할 수도 있고 심방세동 치료 후 재발 여부를 판단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리를 적용한다면 모니터링 용도로 사용해서 재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그 가치를 입증하기 수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AliveCor는 다양한 진료 상황에 대해 임상 시험을 실시했는데 위에 나온 연구의 경우 심방세동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게 AliveCor를 나누어주고 집에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사용해서 그 당시 심전도를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예전같으면 이런 일이 생기면 불안해서 바로 병원으로 왔을 환자들이 심전도 결과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불필요한 외래 방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유념해야할 것은 AliveCor와 같은 제품을 만들 때 단순히 심전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만 입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기본 중의 기본에 불과합니다. 진짜 게임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AliveCor가 어떤 의미있는 결과 지표를 개선해 주는 지를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특히 AliveCor와 같은 휴대용 심전도 측정기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유형의 제품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마다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를 입증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4번은 입증 부담이 가장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입증된 검사가 더욱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치료 결과에 미치는 영향까지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메디케어로부터 정식 수가를 적용받고 있는 IDx-DR입니다. 과거 포스팅과 제 책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당뇨병 환자는 매년 망막 사진을 찍어서 당뇨성 망막 병증 여부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당뇨병 환자에 대한 스크리닝 검사입니다. 그런데 환자들이 이 검사를 열심히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뇨 약도 안먹으면 빨리 죽을 것 같기 때문에 내과 의사나 가정의학과 의사 외래는 그럭저럭 잘 방문해서 약 처방은 받지만 일년에 한번 해야 하는 망먹 검사는 중요성을 못느끼고 차일피일 미루기 쉽습니다.

IDx-DR은 당뇨 환자의 망막 사진을 분석해서 딱 2가지를 이야기 해줍니다. 지금 당장 안과의사를 보러 가야하는지 아니면 1년 뒤에 다시 망막 사진을 찍으면 되는지입니다. 근데 다른 의료 인공지능과는 다르게 IDx-DR은 판독 보조 용도가 아니고 진단 용도입니다. 즉, IDx-DR이 얘기해 주는 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면 됩니다.

IDx-DR은 안과에 설치하는 용도가 아닙니다. 안과에서는 안과 의사가 망막 사진을 판독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내과의사나 가정의학과 의사 외래에 설치하는 용도입니다. 당뇨 약을 타기 위해서 외래를 방문한 환자가 1년에 한번 망막 사진을 찍으면 그 자리에서 결과가 나옵니다. 바로 안과 의사를 보러가야 한다고 한다면 어지간히 간 큰 환자가 아니고서야 빠른 시일 내에 안과 의사의 진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IDx-DR의 용도는 이미 입증된 스크리닝 검사 방법 (=당뇨병 환자에서 매년 망막을 검사하는 것)이 더욱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IDx-DR은 망막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판독해 주는 것이 아니고 오직 당뇨성 망막 병증과 관련된 상황만 봐준다는 점입니다. 즉, IDx-DR이 1년 뒤에 망막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했어도 그 환자는 당뇨성 망막 병증 이외의 망막 질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왕 망막 사진 찍은 김에 이것저것 다 봐주면 훨씬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망막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질환들은 아직 스크리닝에 대한 가치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다른 질환에 대한 판독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그것이 치료 결과(이 경우는 환자 생존 보다는 실명 혹은 시력 저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입증 부담이 훨씬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한가지 눈여겨 볼 점은 IDx-DR이 판독 보조 용도가 아니라 진단 용도라는 점입니다. 의료 인공지능 회사에 계신 분들 중에는 FDA (혹은 식약처) 허가 사항이 판독 보조 용도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정확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그 결과를 믿어도 거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진단 용도로 허가받으 제품과 정확도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근데 이는 의사의 심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망막 사진 판독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안과 의사가 아닌 의사는 망막 사진이라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까막 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판독 보조 용도의 인공지능이 정확하다고 해도 이를 믿고 밑에 사인만 하기는 부담스럽습니다. X-ray나 CT의 경우 영상의학과 의사가 아닌 경우에도 어느 정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판독 보조용 제품을 사용하는데 부담이 없지만 안과는 의료의 여러 진료과 가운데에도 매우 특수한 영역이라서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4번에 해당하는 또 다른 사례로 Viz.ai 회사의 의료 인공지능 ContaCT가 있습니다. 이는 뇌졸중 의심 환자에서 실시하는 뇌혈관 CT 조영술에 적용됩니다. 뇌졸중이 의심되는 환자에서는 빠른 진단을 통한 빠른 치료가 중요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뇌 조직이 상하기 때문에 Time is brai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이야기 하는 골든 타임입니다. 그런데 바쁜 병원 환경에서 유기적인 진료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뇌졸중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는 자주 벌어집니다.

ContaCT는 병원 시스템에 탑재되어서 뇌졸중이 의심되는 CT 조영술 검사를 찾아냅니다. 의심되는 검사를 찾아내면 영상의학과 의사가 판독해야 하는 검사 대기열의 최상단으로 올라가도록 해줍니다. 이와 함께 병원 내 뇌졸중 진료와 관련된 모든 의료진에게 비상 알람이 가도록 합니다. 즉 ContaCT는 다른 의료 인공지능 처럼 판독 정확도를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중요한 환자가 가급적 빠르게 진단받을 수 있도록 업무 플로우를 개선해 줍니다.

그럼 만약 ContaCT가 잘 못 찾아낸 환자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회사 측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1. 뇌졸중이 있는데 잡아내지 못한 경우(=false negative): ContaCT가 없을 때에도 진단이 늦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해당 환자에는 차이가 없음
  2. 뇌졸중이 없는데 잡아낸 경우(=false positive): 영상의학과 의사가 판독해야 하는 업무량에 비해서 건수가 적기 때문에 다른 환자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정확도가 높다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진료 플로우에 따라 가치 입증의 이슈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든 새로운 진단, 치료 방법은 기본적으로 치료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해야 함
  2. 치료 결과에서 멀면 멀수록 가치 입증이 힘듦
  3. 가치 입증 부담을 줄이기 위한 네가지 방법이 있음

많은 사람들, 회사들이 스크리닝에 대한 환상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만 대상으로 하면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여 시장 규모를 키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스크리닝을 주류 의료계로 편입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국내 대기업에서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우리는 의료를 잘 모르니 의료기기 허가 받고 보험 적용 받아야 하는 것보다는 일반인들이 쓸만한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입니다. 그런데 의료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의료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스크리닝 제품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가장 힘들며 차라리 구체적인 용도를 가진 의료기기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쉽다.’

물론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전제는 주류 의료계에서 인정하는 가치를 다룬다는 점입니다. 즉, 의료로서의 가치와 무관하게 소비자를 구워삶을 자신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사실, 많은 회사들이 이를 노립니다. 그런데 헬스케어 B2C 비즈니스는 그대로 쉽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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