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포스팅에서 다룬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들이 고도화되면서 회사들 간에 M&A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고 그 종착점에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슈퍼 플랫폼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비즈니스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한국에서 슈퍼 플랫폼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렇지만 최근들어 원격진료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보험 등 연관 업종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업계가 여러모로 활발해지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향후 디지털 헬스케어 슈퍼 플랫폼을 염두에 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회사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슈퍼 플랫폼은 어떤 모습을 띄게 될 지 상상력을 발휘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단, 환자 진료를 중심으로 한 영역을 다루려고 합니다. 즉, 다이어트, 운동 등과 관련된 영역을 다루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슈퍼 플랫폼은 어떤 형태를 띄게 될까요? 플랫폼에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될 것 같습니다.
- 원격진료
- 만성 질환/ 정신 건강 관리 (DsMx)
- 원격 약 배송
- 디지털 치료제, 원격 모니터링 (DTx & RPM)
정신 건강 관리 정신과 의사의 원격진료가 아닌 상담 혹은 멘탈 케어 서비스로 보면 될 것입니다.
이 요소들을 기본으로 해서 소비자 상황과 가치에 따라 다음과 같은 플랫폼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플랫폼 | 플랫폼 성격 | 구성 요소 | |
1-1 | 일반 진료 기반 | 1차 진료 과목을 중심으로 진료에 집중 | 진료─DsMx─약 배송─DTx, RPM |
1-2 | 특정과 진료 기반 | 소아과, 산부인과 등 특정 과목 진료 및 기타 기능 연계 | 소비자 도구─진료─DsMx─약 배송─DTx, RPM─커머스 |
2 | 오프라인 케어 기반 | 재가 요양, 소아 재활 등 가정, 오프라인 시설에서의 케어 중심 | O2O─(진료)─DsMx─(약 배송)─DTx, RPM─커머스 |
3 | 온라인 질환관리 기반 | 당뇨병 등 만성 질환 관리 중심 | DsMx─약 배송─DTx, RPM─커머스 |
1-1 일반 진료 기반은 디지털 헬스케어 슈퍼 플랫폼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격진료를 시작으로 해서 약 배송 및 만성 질환 관리, DTx, RPM 등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붙습니다. 진료 및 이를 통한 처방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2 특정과 진료 기반은 기본적으로 진료 기반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앞 뒤로 다른 요소들이 추가되는 모델입니다. 감기와 같은 일반적인 진료보다는 소아과 산부인과와 같은 특정 영역에서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때 진료 앞 단계에 소비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통해서 소비자를 유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아과의 경우 소아 발열 관리를 해주는 열나요와 같은 서비스, 산부인과의 경우 sexual health 혹은 생리와 관련된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경우 커머스를 붙일 여지가 크다고 판단됩니다. 이 모델은 1-1 모델에 비해 대상 환자군은 좁지만 커머스를 통해서 수익 가능성을 높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오프라인 케어 기반은 현재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케어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입니다. 오프라인 케어 매칭 서비스를 O2O라고 표현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의 재가 요양 서비스, 장애인 복지관 혹은 아동 상담소와의 연계 서비스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재가 요양 서비스는 거동이 제한적인 분들에게 이루어지는 home care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플랫폼이 의미가 있는 것은 재가 요양에 해당되는 환자들이 각종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만 노인이 혼자서 이런 서비스를 받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양보호사와 같은 접점 인력이 이를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 복지관이나 아동 상담소의 경우 디지털 치료제 유통 및 관리를 위한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온라인 질환관리 기반은 아직 한국에서 원격진료가 법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각해 본 모델입니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이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환자의 자가 관리 프로그램에 환자 커뮤니티나 SNS를 붙이는 모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정 질환 환자를 충분히 모으는 경우 디지털 치료제와 원격 모니터링을 위한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고 커머스도 붙일 수 있습니다. 1-2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플랫폼 시장 진입 전략
이렇게 4가지 정도의 모델을 염두에 둘 때 어떻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까요? 3번은 플랫폼의 특성 상 진입 모델이 거의 정해져있을 것 같습니다. 환자 커뮤니티 혹은 만성 질환 관리 앱 서비스를 기반으로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1,2번의 경우 각각 진료 서비스 혹은 O2O가 핵심인 만큼 matching platform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matching platform은 어떤 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matching platform을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1번과 같은 진료 기반 모델과 관련해서 원격 진료가 아직 한국에서는 임시로 허가되었기 때문에 아직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입니다. 3번은 적어도 규제 상으로는 용이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1~2년 부터 여러 회사가 나오고 있는 재가 요양 매칭 플랫폼입니다. 노인 장기 요양 보험의 적용을 받는 재가 요양 서비스와 간병인 파견 서비스는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간병인 파견 서비스는 (오프라인 접점을 가진) 디지털 헬스케어 슈퍼 플랫폼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간병인은 병원에서 일하며 병원에는 간병인보다 의료 전문성이 뛰어난 인력이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가 요양 서비스에서 집으로 파견되는 요양보호사가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서 웅진 코웨이의 코디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환자의 약 복용 관리부터 디지털 치료제 및 원격 모니터링과 관련한 환자 접점 역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3번 모델의 또 다른 형태로 오프라인 아동 상담소 혹은 치매 센터와의 O2O 플랫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재가 요양에 비해서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ADHD, 발달 장애 및 치매와 관련된 디지털 치료제와 원격 모니터링과 해당 질병과 관련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탑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칭 플랫폼을 바로 만드는 것은 여러가지로 녹록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가장 중요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원격진료가 아직 정식으로 합법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때 애둘러 가는 방법을 택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의 핵심은 서로 다른 참가자 간의 interaction이기 때문에 결국 플랫폼 진입 전략은 어디서 유효한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헬스케어에서는 의사-환자 간 interaction이 중요하기 때문에 의사 혹은 환자 한쪽에서 접점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의사 쪽에서 접근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의사가 환자와의 interaction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의사 업무 도구의 대명사인 EMR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도구로 EMR을 꼽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EMR에 저장된 데이터를 염두에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EMR의 데이터는 의료기관이 아닌 플랫폼 운영자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기존의 서버 기반의 EMR은 물론 최근 나오고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EMR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EMR은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생성, 저장보다는 보험 청구를 위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EMR에 저장된 것은 환자 의료와 관련된 최선의 정제된 데이터보다는 보험 청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데이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대형 병원은 상황이 낫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빨대만 꽂으면 유용한 가치를 쏙쏙 뽑아낼 수 있는 데이터 유전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많은 경우 의학적으로 의미있는 데이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붙어서 오랜 시간 정리해야 합니다.
EMR과 연동해서 의사의 업무 플로우와 연동될 수 있는 형태의 도구 역시 플랫폼 진입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흔히 동네 의원 진료 예약 도구로만 알려진 똑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똑딱의 핵심은 1차 진료 환경에서 사용되는 다수의 EMR과 연동되어 의사의 진료 플로우와 연계된다는 점입니다. 진료 예약은 일종의 미끼 상품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위에 다양한 도구를 얹을 수 있습니다. 똑딱은 다수의 EMR 회사들을 주주로 두면서 사실상 1차 진료 환경에서 사용되는 주요 EMR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회사들은 적어도 1차 진료 환경에서는 이와 같은 모델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1차 진료 환경에서 비슷한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 힘들다면 대형병원을 상대로하면 어떨까요? 대형병원이 좋아할만한 기능을 찾아낸다면 진입은 수월할 수 있습니다. 대형병원은 몇백억을 들여서 EMR을 만들었기 때문에 EMR 회사에 대해서 우월한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EMR 회사로 하여금 기능 연동을 강제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동네 의원의 경우 적은 사용료를 내고 기성품 EMR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능 연동을 강제하기 힘듭니다. 문제는 이런 업체 대비 대형 병원의 우월한 입장이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이 주도권을 행사하기 힘들어서 사실상 플랫폼으로 작동하기 힘들어집니다.
환자 쪽에서 접근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환자에게 유용한 정보나 도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정보는 병원에 대한 것과 환자 자신에 대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병원에 대한 것은 환자에게 유용할 수 있는 병원 정보 (개설 과목, 의사 정보, 진료 시간 등) 혹은 환자 리뷰가 있습니다. 환자 자신에 대한 정보로는 건강 검진 데이터를 비롯한 환자의 건강 혹은 진료 데이터를 모아주는 것이 해당될 수 있습니다. 많은 논의가 있는 마이데이터 사업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외에도 환자가 건강과 관련해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symptom checker 기능을 통해 환자가 어떤 진료과를 가는게 좋은 지를 알려준다던지 할 수 있습니다. 환자 쪽에서 접근하는 회사들의 대표적인 사례로 병원 정보 제공 서비스로는 굿닥, 환자 리뷰는 모두닥, 건강 검진 데이터는 착한의사, 환자 사용 도구로는 열나요를 꼽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환자 건강 데이터를 모아주는 것만으로는 가치가 나오기 힘들다고 봅니다. 이런저런 곳이 안좋으니 관리 잘 하셔야지요라고 맞춤형으로 알려주었을 때 환자는 건강을 더 잘 관리하게 될까요? 건강 검진 등을 통해서 이런저런 수치가 좋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건강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에서 좀 더 정밀한 데이터를 제시해주는 것만으로 행동이 바뀔까요? 개인에게 주는 가치보다는 의사가 기존 진료 데이터를 파악하도록 해주는 가치가 더 클 지 모릅니다.
플랫폼의 핵심이 interaction이라고 할 때 적어도 interaction frequency (사용 빈도)와 interaction value (가치, 효용) 둘 중 하나는 뛰어나야할 것입니다. 평소에 자주 쓰는 서비스가 되던지 아니면 그와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가치가 크기 때문에) 바로 쓰고 싶은 그런 서비스가 되어야 합니다. 환자 쪽에서 접근 방법 가운데 환자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가치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 자체의 발전이 더딘 한국에서 슈퍼 플랫폼의 모습을 그리고 준비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장이 열린 이후에 시작해서는 늦을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자명합니다. 한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본다면 지금쯤 이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